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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드림/내가 청년 리더]“美교수 자리보다 사업이 더 끌렸죠”

작성자 : 슈퍼관리자 / 날짜 : 2017.04.19

P2P대출업체 ‘모우다’ 전지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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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만난 P2P 대출회사 ‘모우다’의 전지선 대표는 “다들 ‘왜 교수 그만뒀냐’고 묻는 건 한국에서 안정된 직장을 얻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어디 가서 교수보다 더 나은 직업을 다시 가질 수 없을 것이란 걱정이 앞설 만큼 한국 사회가 빡빡하다는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어머니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올해도 한국에 남아 사업을 계속 하겠다는 그의 말 때문이었다. 설득이 이어졌다.

“안 된다. 무엇 때문에 낯선 나라에서 젊은 날 그 고생을 한 거냐. 이제 성과가 나올 때가 됐는데….”

어머니에게 낯설기만 한 개인 간 거래(P2P) 대출사업은 ‘사채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미국 주립대 교수와, 비록 어머니의 관점이라지만, 사채업자 사이의 갈림길에 섰다. 그는 결국 고집을 꺾지 않았다. 사람들이 잘 들춰보지 않는 논문만 쓰다가 젊은 날을 보내기는 싫었다. P2P 대출회사 ‘모우다’의 전지선 대표(36) 얘기다. 14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의 모우다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 ‘돌아갈 수 없게 됐다’는 이메일을 보낸 날이었다. 그는 지난해 여름까지 이 학교에서 테뉴어(정년 보장) 트랙 조교수로 게임 이론 등을 강의했다.


○ 미국에선 아무도 하지 않은 질문

“왜 교수를 그만뒀냐”고 묻자 전 대표의 얼굴에 작은 웃음이 떠올랐다.

“한국에 돌아와 만난 사람들이 모두 한 번씩 물어보는 말이에요. 그런데 미국에선 아무도 그 질문을 안 했거든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그 일을 통해 내가 행복할 수 있는지를 많이 물어봤죠.”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에서 함께 정치학 박사 과정을 밟았던 멕시코 출신 친구는 자기 일처럼 신나 했다고 했다. 그 친구는 대학원을 마치고 바로 뉴욕타임스 데이터 분석가로 취업했고 지금은 페이스북에서 일하고 있다. 3년 전 친구가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서도 기업에 취업하겠다고 했을 때 전 대표는 끝까지 말렸다. 그새 입장이 뒤바뀐 전 대표에게 친구는 “인생 참 재밌다”며 응원했다. 전 대표가 썼던 논문은 학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수학으로 애써 증명한 이론들은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학자들만 이해할 뿐 현실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도 피부에 와 닿았다. 식당에서는 그보다 늦게 주문한 사람들이 먼저 식사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마침 한 학기 강의를 쉬게 됐다. 학교에서 배운 ‘기술’ 중 현실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게임 이론을 배우며 익혔던 데이터처리와 분석이었다. P2P에서 그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성공 신화를 썼던 P2P 대출회사 ‘렌딩클럽’도 뜯어보면 데이터 분석 회사였다. 전 대표는 지난해 여름방학이 시작하자마자 한국에 들어왔다. 개발자를 만나 홈페이지 등 시스템을 구축한 뒤 9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날까지 모우다의 누적 대출 잔액은 22억8000만 원이었다. 누적 투자 건수는 500여 건이었다. 7개월 동안 거둔 성적치고는 나름대로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데이터를 보면 패턴이 보인다”

모우다는 ‘메디컬 전문’ P2P 대출회사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에게 대출 신청을 받은 뒤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겠다는 투자자들을 모은다. 현재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가 가장 많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우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건의료 빅데이터 개방 시스템’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병원 재무제표와 함께 들여다보면 해당 병원의 매출 전망 등도 분석할 수 있다. 전 대표는 “데이터를 보면 패턴이 보이고 그 패턴을 토대로 해당 대출의 부실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까지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가 많아지면 의사가 아닌 일반 개인 대상 대출 상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렌딩클럽의 대출 데이터도 틈틈이 분석해 정리하고 있다. 렌딩클럽은 131만 건이 넘는 대출 데이터를 인터넷에 낱낱이 공개해 뒀다. 대출자 소득, 주택 소유 여부, 대출 목적 등이 자세히 나와 있어 대출자 신용 평가 모델을 만드는 데 참고할 부분이 많다. 국내에서는 아직 개인 신용 데이터를 공개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지 않아 신용 평가 모델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의 연봉은 교수 시절 받았던 돈의 10분의 1 수준이다. ‘본전’ 생각이 나긴 하지만 후회는 없다.

“학교에서 제가 쓰던 논문에 대해 기대가 컸어요. 그런 믿음을 저버렸다는 게 미안할 따름이죠. 근데 가만히 계산해 보니까 미국에 계속 있었다면 죽을 때까지 몇십억 원은 벌 수 있었더라고요. 사업으로 그것보다는 많이 벌어야 수지가 맞는 건데…(웃음).”

그는 여윳돈이 100만 원도 채 안 되는 사람에게 간단하면서도 좋은 투자처를 제공해주는 게 불평등 해소에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P2P 회사들이 정직하게 정보를 제공한다면 보통 사람들이 많은 지식이 없어도, 시간을 별로 들이지 않아도 투자를 할 수 있어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세습 자산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때 더 중요해지는 건 투자와 재테크죠.”

교수의 ‘흔적’이 여전히 묻어났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