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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은 도시 청년들에 기회의 땅… 3년 생활비는 확보해야”

작성자 : 슈퍼관리자 / 날짜 : 2017.10.31

[청년 창농열차]충남 서천서 1박2일 귀농체험 #1. 더 많은 청년들이 찾아왔으면…  

28일 오전 서울 용산역에서 출발한 새마을호의 한 객차에서 채상헌 연암대 교수가 ‘열차 내 특강’을 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경태(31), 이수진 씨(30·여)는 2년 전 충북 괴산군 한 농장에서 처음 만나 연인이 됐다. 둘 다 과도한 회사 업무에 지쳐 도시를 탈출했다. 김 씨는 “나 자신이 마치 부품처럼 느껴졌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올해 1월 충남 서천군에 왔다. 이 씨의 남동생도 합류했다. 이 씨는 “농업은 내가 들인 노력만큼 정직하게 보람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청년 농부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2. 선배 농부들의 노하우 얻었으면… 

김운득(37), 박희원 씨(35·여) 부부는 맞벌이였다. 올해 초 박 씨가 회사를 그만둔 뒤 막연하게 꿈꾸던 귀농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도시 출신인 부부의 주변에는 농업 경험이 있는 지인이 없었다. 아직 작물도 정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귀농 선배들의 경험담이 필요했다. 박 씨는 “정말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다른 일거리도 있을지 궁금한 게 너무 많은데 귀농교육으로만 해소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28일 저녁 충남 서천군 청소년수련관 강당에서 만났다. 동아미디어그룹 청년드림센터가 마련한 ‘청년 창농열차’ 일정의 하이라이트였던 선배 귀농인들과 예비 귀농·귀촌인 간 ‘즉문즉답’ 코너에서였다. 
 


귀농 선배들은 우선 농업의 가능성에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그렇지만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지난해 귀농한 구지훈 씨(35)는 감자와 고구마를 키우며 ‘관광농원’을 준비하고 있다. 구 씨는 “요즘 시골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오면 너무 좋아한다. 귀농이든 귀촌이든 초기 적응이 쉽지 않은데 청년들은 분명 장점이 있다”고 했다. 

김경태 씨는 “농촌에는 일손이 부족해 농사 말고도 청년들이 할 일이 널려 있다”며 “당장 농사에 도전하기보다 다른 일을 하며 천천히 농촌에 적응할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이수진 씨도 “4년을 준비한 저도 시행착오가 너무 많았다”며 거들었다. 

 


배농사를 짓는 귀농 3년 차 조성근 씨(37)는 너무 성급하게 귀농을 결정했던 점을 스스로 아쉬워하고 있다고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그는 귀농 결심 수개월 만에 서천으로 왔다. 조 씨는 “무턱대고 귀농하는 건 반대다. 최소한 3년 치 생활비는 주머니에 있어야 버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년 창농열차에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대학생, 귀농을 준비하는 30대 부부, 막 농촌에 관심을 갖게 된 회사원 등 다양한 청년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1박 2일간 서천군의 ‘앉은뱅이 소곡주 공방’, ‘한길버섯농원’ 등의 성공한 농부들을 만나고 통나무와 황토로 지은 농촌주택도 둘러봤다. 

이신일 씨(26)는 “평소 농사짓는 지인과 신문 등을 통해 농업과 6차산업의 가능성에 대해 많이 들었는데 직접 체험해볼 수 있어 좋았다. 당장 귀농하지 않더라도 농촌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요리사인 김민수 씨(33)는 좋은 식재료를 찾아다니다 아예 귀농을 생각하게 됐다. 김 씨는 “자연주의 요리를 만드는 스타 셰프들처럼 내가 키운 농작물로 건강한 요리를 만드는 게 꿈이다. 이번 행사로 꿈이 조금 더 구체화된 것 같다”고 했다. 
 


서천군 현지에서는 50명이 넘는 청년들의 ‘깜짝 방문’에 크게 반색했다. 마을공동체 기업 ‘달고개 모시마을’도 그랬다. 주민 신춘옥 씨(64)는 “초등학생을 빼면 우리 마을에 이런 젊은이들이 찾아온 적이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달고개 모시마을은 52가구 중 46가구가 조합을 구성하고 있다. 주민 32명이 교대로 모시송편을 빚어 수익을 나눈다. 그런데 열에 일곱 가구가 고령화로 인해 사업의 근간인 모시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다. 젊은 피 수혈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한 참가자는 “혼자서 농사짓고 판매하는 것만 생각했는데 이런 사업모델을 가진 마을에 진입하는 것도 고려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귀농·귀촌 전문가인 채상헌 연암대 교수는 “농촌은 환경적 측면에서나 경제적 측면에서 국민 전체가 관심을 갖고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도시 청년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일자리도 농촌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천=주애진 기자 jaj@donga.com·김창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