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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드림]막·강·고·졸… “대한민국의 힘, 기술에 있다”

작성자 : 최고관리자 / 날짜 : 201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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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고의 제조업 국가로 꼽히는 독일의 힘은 ‘마이스터(Meister·장인)’에서 나온다. 한국의 마이스터를 꿈꾸는 실무형 인재의 산실을 자임하며 2010년 탄생한 것이 마이스터고다. 바이오, 반도체, 자동차, 전자, 기계, 로봇, 통신, 조선, 항공, 에너지, 철강, 해양 등 다양한 기술 분야에 특화된 21개 고교가 전국 곳곳에 있다. 2월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마이스터고가 취업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상당수 졸업 예정자들이 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하는 등 100%에 가까운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대학 졸업장을 무색하게 하는 ‘슈퍼 고졸’이다. 컨설팅업체인 맥킨지는 한국의 마이스터고를 세계 직업교육의 우수사례로 소개했을 정도다. 마이스터고 1회 졸업 예정자들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력 인플레이션을 깨뜨릴 첨병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대학 졸업장을 따지 않아도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들의 도전은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의 미래이기도 하다. 혹한을 녹일 만큼 뜨거운 열정으로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마이스터고 1회 졸업 예정자들을 만나봤다. 》

지난해 12월 18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594만 m²(179만여 평)에 이르는 공장 마당에는 땅과 바다를 가리지 않고 건조 중인 선박들과 온갖 설비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선박마다 수백 명씩 배치된 기술직 인력들이 작업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작업장에는 용접 불꽃 튀는 소리와 선박용 철재를 잘라내는 굉음이 가득했다.

옆에 있는 동료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작업장에 앳된 얼굴의 신입사원들이 들어섰다. 지난달 3일부터 사내 연수 중인 마이스터고 출신 고졸 신입사원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목청껏 외치는 인사 소리에 작업장에 있던 선배 사원들이 용접 마스크를 벗거나 안전모를 머리 위로 흔들며 반갑게 맞아줬다.

○ 미래 명장을 꿈꾸는 ‘정주영 키즈’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생전 “기술인의 장인혼(匠人魂)이야말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모든 산업의 근간은 제조업이며, 제조업의 경쟁력은 기술에서 나온다는 신념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창업주의 뜻에 따라 1991년부터 대졸 신입사원들에게도 입사 후 두 달간 현장 기술을 익히게 하는 ‘장인혼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마이스터고 출신들을 뽑은 것도 생산 현장에 대한 확고한 철학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이 이번에 뽑은 2월 졸업 예정 고교 생산기술직 사원 114명 가운데 19명이 마이스터고 출신이다.

마이스터고 출신 신입사원들은 다른 생산기술직 직원들과 달리 6개월 과정의 기술교육원과 1, 2년 과정의 사내 협력업체 근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마이스터고 학생들이 3년간 주말도 없이 연마한 기술 수준이 워낙 높다”며 “모셔올 가치가 있는 경쟁력 있는 인재”라고 말했다. 이번 입사자 중에는 기능대회에서 현직 기술자들과 겨뤄 입상한 사람도 여러 명 있다.

이들의 열정은 대졸 ‘형님’들의 ‘스펙’ 못지않다. 추성빈 군(19·전북기계공고)은 어릴 적부터 집 근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 있는 골리앗 크레인을 보며 조선 기술자가 되는 꿈을 꿨다. 추 군은 “대학 입시라는 불확실한 목표 때문에 3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며 “큰아들이 마이스터고에 진학했다며 속상해하던 어머니가 이제 어깨 좀 펴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에서 기술자로 일하는 아버지와 친인척을 보며 자란 황성서 군(19·경북 금오공고)은 중학교 때 자신의 꿈을 마이스터로 정했다. 황 군은 “정주영 창업주의 뜻처럼 한국 대기업들이 세계 일류상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제조업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현장을 지키는 장인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마이스터 “창조적 기술자가 되어라”

현대중공업 고윤열 기장(技長)은 작업장에서 자식뻘인 후배들을 만나자마자 “우리가 나라를 살찌웠으니 너희들이 무역 2조 달러 시대를 열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했다.

선박용 철판 제관 분야에서 대한민국 산업명장에 선정된 고 기장은 39년째 현장을 지키고 있는 전설 같은 존재다. 그는 가정형편 탓에 고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16세의 어린 나이에 기능공이 되기 위해 부산공공직업훈련소 문을 두드렸다. 고 기장은 “당시엔 일반계 고교에 진학해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내 신세를 한탄했던 적도 많았지만 지금 또래 친구들 가운데 일을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소개했다.

고 기장이 지금껏 현장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현장 작업자와 엔지니어의 중개자 역할을 하며 기술을 연마하고 끊임없이 공부했기 때문이다. 제관 분야뿐 아니라 용접, 배관 분야에서도 기능인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기능장에 올랐고 국가기술자격증도 10개 넘게 갖고 있다. 그는 “마이스터란 경영 감각까지 갖춘 창조적 기술자”라며 “기술은 매일매일 발전하기 때문에 현장에서도 배움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 기장은 후배들에게 “대한민국은 기술의 나라다. 머리뿐 아니라 손재주가 좋아야 국민소득 4만 달러로 갈 수 있다”며 “땀의 소중함을 기억하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울산=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