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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드림]입사때부터 ‘매니저’… 고속성장 베트남, 승진도 고속

작성자 : 최고관리자 / 날짜 : 201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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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베트남 호찌민 외곽의 신발 제조업체 ‘성현비나’ 공장. 하늘색 작업복을 맞춰 입은 직원들 사이에서 낯익은 한국말이 들려왔다. KOTRA의 ‘글로벌마케팅 인턴사업’을 거쳐 지난해 말 정직원으로 채용된 정지원(27), 박우림(25), 김현주 씨(24)가 시끌벅적한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한국인 미녀 삼총사’의 맏언니 정 씨는 베트남 생활에 대해 “주 6일 근무에 찌는 듯한 더위 등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면서도 “베트남의 성장을 매일매일 느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며 활짝 웃었다.


○ 입사 2개월 신입사원도 과장 역할


인구 9000만 명이 넘는 베트남 경제는 지난해 6.7% 성장했다. 과거 한국처럼 빠르게 성장하며 아시아의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다. 급성장하는 베트남 시장에 도전하는 한국 젊은이도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주관한 연수·인턴·박람회 등을 통해 베트남에 취업한 사람은 모두 205명으로 2013년 17명, 2014년 72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고속 성장하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많다는 점도 한국 청년들이 현지 취업에 도전할 수 있는 든든한 디딤돌이다. 박상협 KORTA 호찌민 무역관장은 “현재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만 4400여 개”라며 “베트남 현지 직원을 관리하고 한국인 경영진과의 가교 역할을 맡아줄 젊은이를 찾는 수요가 넘쳐나는데 마땅한 사람이 부족해 뽑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청년들 대부분이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나 한국인이 현지에서 창업한 회사에서 중간관리자로 근무한다. 정 씨가 근무하는 성현비나 역시 부산에 본사를 둔 한국 회사의 베트남 현지법인이다. 이곳에서 한국인 30여 명이 베트남 직원 5000여 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정 씨를 포함한 ‘삼총사’ 모두 입사한 지 2개월 된 신입사원이지만 직책은 입사할 때부터 각 부서에서 ‘매니저(중간관리자)’다. 정 씨는 “베트남에 오기 전 영국의 신문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는데 당시 전화 응대나 허드렛일만 했다”며 “베트남에선 인턴 때부터 관리자로 일하니 권한도 많고 책임감도 생겨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한국에 비해 물가가 싸지만 급여 수준은 한국 기업에 맞춰져 있다. 정 씨처럼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초봉은 2만5000∼4만5000달러(약 3000만∼5200만 원) 정도다. 현지 KOTRA 관계자는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부서장을 맡고 있는 한국인들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며 “지금 입사하는 젊은이들이 상대적으로 일찍 중요 업무를 맡고 승진도 빨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현지어 익히고 현지 창업에 도전


동남아 국가에서 직장을 얻고 정착하려면 ‘현지어’라는 장벽을 넘어서는 게 필수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흥옌공업단지에서 만난 유병선 씨(32)는 한국에서 첫 직장인 삼성전자를 다니다 그만두고 베트남을 찾았다. 가구 관련 일을 하고 싶어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베트남어가 발목을 잡았다.

유 씨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에서 주관하는 ‘글로벌청년사업가양성과정’을 통해 이를 극복해냈다. 이 과정은 매년 100여 명의 학생을 선발해 약 10개월간 베트남 언어와 직무 교육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고용부의 ‘K-MOVE’ 사업으로 선정돼 연수비 전액이 국비로 지원된다. 유 씨는 매일 오전 5시 반에 일어나 오후 10시까지 어학 공부에 매진했다. 외출이 허용되는 일요일에는 시장, 상점 등을 돌아다니며 현지인들과 어울렸다. 유 씨는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영어를 섞어 쓰지만 현지 직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작업 실수를 없애려면 베트남어를 빨리 습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베트남에서 취업에 성공해 일하다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들도 있다. 2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 온 이진희 씨(28)는 물류회사에 취직했다. 회사에서 통관 대행 업무를 직접 총괄하며 업무 경험을 쌓았다.

“통관 대행의 역량은 현지 세관과의 관계예요. 세관 직원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일처리 결과가 크게 달라지니까요. 세관원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베트남 각 지역의 세관을 돌며 함께 술도 마시며 어울렸죠.”

올해 1월 회사를 그만둔 이 씨는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다. 그 대신 베트남 북부의 작은 도시인 라오까이로 가 물류회사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라오까이는 중국과의 접경지대에 있지만 교통이 불편한 내륙지방이어서 중국과의 물류 이동이 활발하지 않았던 지역이다. 하지만 최근 하노이와 라오까이 사이에 고속도로가 개통돼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씨는 “모든 산업이 포화상태인 한국과 달리 동남아는 큰 자본이 없어도 도전할 만한 ‘블루오션’이 많은 편”이라며 “1년여의 회사 생활을 통해 닦아놓은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믿고 일단 부딪혀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노이·호찌민=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