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LG-현대車 이어 SK… 대졸공채, 스펙의 종말

작성자 : 최고관리자 / 날짜 : 2015.03.06

기업들 직무역량 위주 채용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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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이 올 상반기(1∼6월) 신입사원 공채부터 외국어 능력, 정보기술(IT) 자격증, 해외 연수경험, 각종 수상경력, 논문 내용 등을 적는 이른바 ‘스펙 입력란’을 없애기로 했다고 5일 밝혔다. 외형적 자격보다는 문제해결 능력이 돋보이는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조치다.

SK 외에 다른 대기업들도 입사 지원자들의 스펙보다는 자기소개서에 나타난 가치관과 면접을 통해 드러나는 인문학적 소양 및 상황 판단력을 주요 평가 기준으로 삼는 곳이 늘어나고 있어 취업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 스펙보다는 직무능력에 중점

9∼20일 접수하는 SK그룹 입사지원서에는 이름, 학력, 전공 및 학점 등 기본적인 정보만 기재하면 된다. SK그룹은 해외영업직이나 제약 및 연구개발(R&D) 등 특정 직무에만 외국어 성적이나 자격증을 제시하도록 할 예정이다. 사진도 제출할 필요가 없다.

대신 자기소개서나 면접, 인턴십 등을 통한 직무수행능력 평가를 통해 합격자를 가릴 방침이다. 조돈현 SK그룹 인재육성위원회 전무는 “경영환경과 사업내용이 복잡해짐에 따라 각 구성원의 문제해결 역량 등 직무수행능력이 사업 성패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2일부터 접수하고 있는 입사지원서에서 대학동아리나 봉사활동 기입란을 삭제했다. 또 서울 서초구 양재대로 현대차 본사 사옥에 새롭게 설치한 ‘H-스퀘어’에서 좋은 면담 평가를 받으면 서류전형을 면제해 주기로 했다.

포스코도 해외연수 활동이나 제2, 제3 외국어, 한국사를 제외한 자격증 등에 대한 평가우대 정책을 폐지했다. LG그룹은 10대 그룹 중 처음으로 지난해 하반기(7∼12월) 공채부터 서류전형에서 사진과 함께 수상경력, 어학연수, 인턴, 봉사활동 등에 대한 입력란을 모두 없앴다.

삼성그룹이 올 하반기 공채부터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에 앞서 5개 직군별로 차별화된 ‘직무적합성 평가 전형’을 도입하기로 한 것은 직무역량 평가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연구개발(R&D)·기술·소프트웨어(SW) 직군은 전공과목을 많이 이수하고 성적이 좋으면 SSAT에서 가점을 받는다. 영업 및 경영지원직은 해당 업무에 대한 관심이나 경험을 풀어 쓴 ‘직무 에세이’가 주요 평가 대상이 된다.

○ 고비용 스펙 경쟁 종식에 긍정적 영향

대기업 채용방식에 뚜렷한 변화가 생기면서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치열한 스펙 경쟁이 완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SK그룹 관계자는 “대학생들이 스펙 쌓기에 몰두하면서 대규모 사회경제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기업들에도 부담이었다”며 “이번 채용방식 변화는 능력 중심 인재양성 문화가 국가적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최고 경영층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해외연수, 자격증 등의 스펙은 대부분 개인적인 노력보다는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기업들의 ‘탈 스펙’ 움직임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혜순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도 “당장 지방대생들의 취업 기회가 넓어지진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대학 서열화 등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기업들이 변경된 공채 전형 방침을 원서 접수를 코앞에 두고서야 밝힌 데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금융 관련 자격증과 외국계 기업 인턴 경험을 가진 대학생 전모 씨(28)는 “대다수 취업 준비생들이 여러 기업을 지원하기 때문에 모든 기업이 스펙을 보지 않는 이상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며 “오히려 기존대로 스펙도 준비하면서 새로운 면접전형을 준비해야 해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김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