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로봇-AI가 사람 대체… 공장 늘어도 고용한파 더 거세져

작성자 : 슈퍼관리자 / 날짜 : 2016.12.16

고용절벽 온다]<下> 노동시장 흔드는 4차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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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용품 제조업체 아디다스가 9월부터 독일 안스바흐에서 가동하기 시작한 ‘스피드 팩토리’에서 로봇이 운동화를 제작하고 있다(맨위쪽 사진). 3D프린터가 고객이 입력한 정보에 따라 운동화 밑창을 만들고 있다(가운데 사진). 스피드 팩토리가 제작한 운동화.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과 모양 색깔 등을 모두 반영해 맞춤형으로 생산한다. 사진 출처 아디다스그룹 홈페이지

 세계적 스포츠용품 업체 아디다스는 9월부터 독일 안스바흐에서 ‘스피드 팩토리’를 시범 가동 중이다. 1993년 공장을 모두 해외로 이전한 지 23년 만에 다시 독일 내 생산을 시작한 것. 내년부터는 본격 가동에 들어가 연간 50만 켤레의 운동화를 생산할 예정이다.

 선진국들은 해외로 나간 자국 기업 공장의 본국 유턴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감세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걸었고,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공장이 돌아오면 일자리와 세수가 늘어나 경제성장과 복지에 모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 국민은 아디다스의 유턴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스피드 팩토리의 상주 인력은 단 10명. 핵심 공정은 컴퓨터와 3차원(3D)프린터, 로봇 12대가 책임진다. 공장은 돌아왔지만 일자리는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정보통신기술 융합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산업은 물론이고 노동시장 구조 까지 180도 뒤바뀐 것이다.


○ 노동시장 뒤흔드는 4차 산업혁명 

 스피드 팩토리의 생산 방식은 혁명적이다. 소비자가 세계 어디서든 아디다스 홈페이지에 접속해 디자인과 소재, 색깔, 깔창 등의 취향을 자유롭게 입력하면 스피드 팩토리에 즉각 전송되고, 컴퓨터와 로봇들은 5시간 안에 맞춤형 신발을 제작한다. 기존 공정에서 맞춤형 신발은 약 6주가 걸렸다. 1년 6개월 걸리던 신상품 제작도 스피드 팩토리는 열흘이면 끝낸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으로 고객이 가장 좋아할 만한 디자인을 직접 골라 주는 시스템도 마련된다. 드론을 통한 무인 배송도 곧 시도된다. 동남아시아 공장에서 연간 50만 켤레를 생산하려면 600명 이상의 직공을 써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고용하지 않아도 된다. 로봇의 생산성은 인간보다 훨씬 높고 초기 투자 외의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아디다스는 스피드 팩토리의 생산량을 연간 100만 켤레로 늘리는 한편 모든 공장을 이런 방식으로 전환해 독일로 들여올 계획도 갖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에도 치명타를 입힐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은 노동시장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일단 로봇과 컴퓨터가 근로자를 대체하면서 일자리가 크게 감소한다. 일자리 감소가 ‘일자리 절벽’과 만나면 실업의 양과 폭은 커지고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가 활성화되면서 근무와 휴식, 직장과 사적 영역의 분리가 희미해진다. 특히 사업주와 근로자가 근로계약이 아닌 일종의 용역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 ‘자영업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이런 변화가 벌써 시작됐다. 독일은 용접공 등 단순 제조업 종사자들이 이미 ‘1인 자영업자’처럼 일을 한다. 고용주와 근로계약을 맺고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있거나 하고 싶을 때마다 몰아서 하고 나머지 시간은 쉰다. 앞으로 이런 현상이 확대되면 공장제 생산 방식에 바탕을 둔 노동법은 쓸모가 없게 되며 같은 공간에서 같은 노동을 한다는 ‘동일성’이 핵심인 노동조합 역시 연대의 토대가 흔들리게 된다.


○ 근본 대책 마련에 눈감은 한국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15일 국가인력양성협의회를 열어 내년도 국기훈련(국가의 기간이 되는 산업 분야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훈련비 전액을 국가가 지원하는 훈련) 개편 내용을 확정했다. 기존 114개 직종에서 훈련 성과가 저조한 도금, 주조 등 16개 직종을 제외하고 사물인터넷(IoT), 영상촬영 드론 조종, 증강현실 등 14개 직종을 포함시켰다. 4차 산업혁명으로 수요가 증대될 것으로 보이는 분야를 적극 지원해 전문가를 양성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올해 하반기가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마비되면서 무방비 상태로 방치됐다는 분석이다. 네덜란드(1980년대), 독일(2000년대) 등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개혁을 추진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했고 미국 일본 등은 관련 산업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는 “미래 지향적인 논의를 하는 것은 좋은데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숙제도 아직 못 끝낸 상황”이라며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취업 형태에 대비한 법 제도와 사회 안전망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4차 산업혁명::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이 이끄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뜻한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사물을 자동적·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가상 물리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산업과 노동시장은 물론이고 개인 생활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1차 산업혁명은 1784년 영국의 증기기관이 주도했고, 2차 산업혁명은 1870년부터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으로 시작됐다. 3차 산업혁명은 1969년부터 시작된 정보화와 자동화 생산시스템이 주도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