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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정부 “신중해야” vs 노조 “일단 줄이자”

작성자 : 슈퍼관리자 / 날짜 : 2017.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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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진척을 보이지 못하던 근로시간 단축이 최근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의 “52시간 이하 합의 공감대” 발언으로 다시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하 의원의 주장과 달리 정치권은 좀처럼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계는 현실을 무시한 무리수라고 반발했다. 여기에 정부와 노동계는 기존 입장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어 이번에도 입장 차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정치권과 정부, 노동계 등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의 쟁점은 근로가 가능한 일주일을 5일로 보느냐, 아니면 7일로 보느냐다. 이에 따라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선이 52시간 또는 68시간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일일 근로시간을 8시간, 주 40시간으로 정하되 연장근로를 주 12시간까지 허용함으로써 주간 최대 52시간 근로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근로시간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이 ‘52시간’이 근로일인 평일(5일)에만 적용되는 개념으로 행정해석하고 있다.

고용부는 “정부는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일관되게 1주의 개념을 휴일을 제외한 근로의무가 있는 날을 기준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대법원 판결 또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와 구별해 휴일근로 중 8시간을 초과하는 부분만 연장근로로 인정해왔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평일 52시간 근무에 토·일 휴일 각각 8시간씩 초과근무가 가능해져 주 근로시간은 최대 68시간까지 늘어난다.

이런 시각은 2015년 노사정 대타협안 마련 때도 적용됐다. 이를 토대로 김성태 바른정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68시간을 기준으로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8시간을 줄인 60시간을 사업장 규모에 따라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적용한 후 최종적으로 52시간으로 가자는 점진적 축소를 담고 있다.

반면 하 의원이 말한 합의는 일주일 중 근로가능일을 7일로 간주해 근로시간 상한을 68시간이 아닌 52시간으로 보자는 것이다. 다만 일시에 적용하기에는 부담이 있으니 300인 이상 사업장은 2년, 300인 미만은 4년의 면벌기간을 설정했다.

정부는 정치권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명시적인 합의안 도출이나 기준이 될 대법원 판례 등이 나오지 않은 만큼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정부는 법률에 따라 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정안이 가결돼야만 근로시간 조정에 나설 수 있다”며 “현재 의원마다 다양한 의견을 펼치고 있어 이를 조율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부가 움직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고용부는 근로시간 단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단계별로 근로시간을 줄여가도록 한 2015년 노사정 대타협안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른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대선까지 2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급히 개정안을 마련하면 그 시행에 대한 부담은 차기 정부가 고스란히 지게 된다”며 “징벌 유예나 적용 유예 모두 표현만 다를 뿐 같은 의미인 만큼 표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기보다 주말근로 임금액 관련 대법원 판결 등 관련 내용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개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는 주 52시간 근로가 이미 명문화된 법 조항을 임의적으로 해석한 정부의 태도가 문제라고 주장한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지금의 노동현실과는 판이하게 다른 2세대 전의 해석기준을 지금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정부는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부담이 커진다는 기업 논리에 휘둘리지 않아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장시간 근로국 2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증가, 근로자 입장에서는 임금 감소의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빨리 확정해야 할 과제임에는 틀림없다”며 “불법행위를 해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사실상 기업 특혜인 면벌조항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주 52시간이라는 큰 원칙을 확정하고 각 사업장별로 교섭테이블을 통해 새로운 임금체계를 자연스럽게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주 52시간 근로로 가는 것은 맞지만 생산성 등에 미칠 영향이 큰 만큼 충격을 줄이는 접근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김동배 인천대 경영학 교수는 “과거에 근로시간을 48시간, 44시간, 40시간으로 단계적으로 줄였던 것처럼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노조도 임금 감소에 대한 노조원들의 불만을 좌시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기에 한 가지 주장만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우선 주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확정하고 추후에 필요한 논의를 이어가자는 노조의 주장에는 찬성한다”면서도 “그렇게 되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손실 부분 보전 요구를 하기 어려워지는 만큼 무조건 유예기간을 없애기보다는 일정 시간을 두고 부수적인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