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취업-대입 앞에… 연휴가 더 바빴죠”

작성자 : 슈퍼관리자 / 날짜 : 2017.10.10

황금연휴를 잊은 사람들

추석 전날인 3일 오전 8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고시학원은 공무원시험 준비에 여념 없는 청년들로 가득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추석 연휴가 마무리되고 있다. 그러나 열흘간 쉰다는 게 먼 나라 이야기인 사람도 많았다. 특히 59개 공공기관의 첫 합동채용을 앞둔 취업준비생에게 이번 연휴는 휴식이 아니라 마지막 담금질 시간이었다. 이번 합동채용으로 3000∼4000명이 취업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연휴를 잊은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추석을 하루 앞둔 3일 오전 8시경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학원가. 청년들은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상징하는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를 신고 학원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김모 씨(24·여)도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학원에 있었다. 강의실은 이미 공시생으로 가득했다. 김 씨는 시험이 50일가량 남아 긴장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내일은 오전 7시부터 나와서 자리를 잡아야겠다”며 “저녁에는 학원이 문을 닫아 근처 대학 도서관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오 무렵 노량진 명물인 ‘컵밥’ 가게들은 공시생들로 북새통이었다. 한 가게 사장은 “역대 최장 연휴라지만 시험 준비생들이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며 이마의 땀방울을 닦아냈다. 

사법시험은 폐지됐지만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도 연휴와는 거리가 멀었다. 카페마다 두꺼운 책을 탁자에 놓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들어찼다. 10년째 법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오모 씨(48) 역시 신림동에서 연휴를 보냈다. 고향은 경남이지만 명절에 언제 내려갔는지 까마득하다. 오 씨는 “나이도 많은 데다 직장도, 아내도 없어 고향에 가면 부모님과 친척 눈치만 봐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대신 추석 당일 저녁에 친한 고시생들과 맥주 한 모금 함께 하며 향수를 달랬다.

다음 달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대표 학원가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는 연휴 내내 불야성이었다. 학원들은 각종 ‘추석 특강’을 내세우며 쉼 없이 움직였다. 학원 앞은 여느 때처럼 자녀들을 태우러 온 학부모 차로 정체를 빚었다. 박모 양(18·고3)은 명절이면 부모님 고향인 대전에 갔지만 올해는 가족 모두 가지 않았다. 대전의 할아버지는 “명절보다는 손녀 대학 진학이 우선”이라고 선언했다. 박 양은 “친구들과 ‘코인 노래방’에 잠시 들르는 걸로 스트레스를 날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4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에서 행락객을 맞는 아르바이트 청년들이 땀을 흘렸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고향에 갈 생각을 미룬 채 아르바이트에 열중하는 청년들도 적지 않았다. 4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에서 만난 임모 씨(25)도 연휴를 아르바이트로 보냈다. 연휴에는 시급을 평소의 1.5배로 준다. 부산이 고향인 임 씨는 “정규직 공채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도 하는데 시급을 이만큼 주는 때도 드물어 자원했다”면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반가운 연휴”라며 웃었다. 

상당수 근로자 역시 긴 휴식은 꿈같은 얘기였다. 지하철 근로자가 그랬다. 서울 강남구 서울교통공사 수서차량기지 기관사 218명 가운데 이번 연휴에 92명이 일했다. 5일 만난 22년 경력 최병진 차장(50)은 ‘징검다리 근무’로 연휴 기간에 6일을 일한다. 이날도 오전 근무를 한 최 차장의 옷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충남에 있는 아버지 산소 벌초도 못했다. 그는 열차 운전을 하며 “추석 때 쉬지는 못해도 추석 연휴를 즐기는 시민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다”는 안내 방송을 틈틈이 했다. 이날 오전 그의 코멘트는 “가을볕에 알곡이 익어가듯 풍요로운 추석에 가족과 함께 웃음 풍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였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예윤·최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