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저녁 있는 삶 vs 돈 없는 저녁… 기업별 ‘엇갈린 희비’

작성자 : 슈퍼관리자 / 날짜 : 2018.06.04

[위클리 리포트]‘주 52시간’ 한달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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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 의무시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는 300명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장이 대상이지만 2020년 1월부터는 50∼299명 사업장, 2021년 7월부터는 5∼49명 사업장도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여야 한다. ‘근면’과 ‘성실’을 강조하며 긴 근무시간을 당연시하던 기존 관행이 무너질 상황에 놓였다. 그만큼 직장인들의 일상생활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 근무 강도 세졌지만 긍정적인 반응 

LG전자는 올 4월 말부터 사무직을 대상으로 ‘주 40시간 근무제’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앞으로 근로시간 제한 기준이 더 강화될 것에 대비한 선제적인 조치다. 이를 위해 근태(勤怠) 정보 시스템을 개편해 점심시간이나 휴식 등 비(非)근로 시간을 근로시간에서 빼도록 했다. 

LG전자의 한 직원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시간을 근로시간에서 빼야 하는 만큼 일과시간이 상당히 타이트해졌다”며 “하지만 상사 눈치를 보지 않고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등 불필요한 시간 낭비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롯데그룹도 퇴근 시간 30분 후나 휴무일에는 회사 컴퓨터를 자동으로 끄는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또 짧은 시간 안에 일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일과시간에 불필요한 회의를 없애는 등 업무 집중도를 높여 야근이나 휴일근무를 없애려는 목적이다.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대기업 사무직 직원들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불필요한 상사 호출이나 회의 등이 줄어들면서 업무 효율이 높아진 데다 ‘칼퇴근’으로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각종 수당이나 사무실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 저녁만 있고 돈은 없는 삶 

정부나 노동계는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직장인들이 과로에 찌든 삶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으로 급여가 감소할 것을 우려하는 직장인들도 많다. 휴일 및 야간근무를 하는 것이 어려워져 각종 수당이 그만큼 줄어들 가능성이 커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올 3월 내놓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중소기업 지원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주당 52시간 이상 일하는 제조업체 직원들이 야근이나 특근을 통한 초과 근무 시간은 주 평균 21.4시간. 다음 달부터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한이 시행되면 초과 근무 시간은 9.4시간으로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제조업체 직원들의 월평균 수입은 296만3000원에서 257만5000원으로 13.1% 감소할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비정규직은 초과 근무 수당이 줄어들면 소득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저녁만 있지 돈은 없는 삶’이 된다는 얘기다. 

근로시간 제한으로 산업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지금도 숙련된 생산 인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추가 노동 비용이 연간 12조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임직원 수 300명 미만 중소기업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무려 8조6000억 원으로 69.9%에 이른다.

○ 업무 특성 고려한 보완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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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신제품을 내놓을 직원들에게 1주일 52시간 근무를 강제한다면 회사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전준희 구글 동영상 사업부문(유튜브) 엔지니어링 디렉터는 지난달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구글 본사에서 열린 ‘한국 엔지니어와의 대화’에서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구글 엔지니어의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주말 근무도 불사하지만 일이 없을 때는 장기 휴가도 자유롭게 가는 등 개인이 알아서 일하도록 하는 것이 구글 방식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이어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정해 일하는 방식보다는 집중적으로 일하는 게 성과가 더 좋다”며 “회사의 생사가 걸려 있는 상황에서도 주 52시간 근무제처럼 제한적으로 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정보통신기술(ICT) 업계는 주 52시간 근무 제한을 기계적으로 맞추는 게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많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을 때에는 연구개발(R&D)이나 생산 인력의 집중 근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 40시간 대신 3개월간 주 평균 40시간을 일하면 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으로 7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성수기나 신제품 발표 직전에 초과 근무를 시키는 대신 비수기나 신제품 발표 후에는 단축 근무를 해 주 평균 근무시간 한도를 맞추는 방식이다. 하지만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한이 3개월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특히 노사 간 서면 합의 없이 ‘취업 규칙’으로 정하면 기한은 2주 이내로 제한된다.

재계 관계자는 “고용노동부 등에 유럽연합(EU)이나 일본 등 선진국들처럼 최대 1년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한을 늘려줄 것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국내 기업들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한 연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진흡 jinhup@donga.com·김재희·송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