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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껏 상상해야 혁신 가능… 청년들에게 시간을 줘라”

작성자 : 슈퍼관리자 / 날짜 :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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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기 듀라코트 그룹 회장(84)은 52세가 되던 1986년, 22년 넘게 다니던 미국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나왔다. 남들은 은퇴를 준비할 나이였지만 그는 집 차고 한편에 사무실을 차리고 평생 연구해 온 특수 도료 전문 기업을 차렸다. 그렇게 홀로 시작한 듀라코트는 그의 끊임없는 연구를 토대로 건축용 철근 부식을 막는 특수 페인트 ‘세라나멜’을 비롯해 산업·건축용 특수 페인트 수백 종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며 미국 시장점유율 1위 회사로 올라섰다. 현재도 연 매출액 3억 달러(약 3390억 원) 중 5%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게 회사의 철칙이다. 

제17차 세계한상대회를 맞아 한국을 찾은 홍 회장은 2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특허를 많이 내고 신기술을 개발해도 승진을 안 시켜 주는 미국 백인 사회 특유의 유리천장에 지쳐서 당시 전 재산 2만 달러를 밑천으로 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미국 대기업들의 수주 경쟁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로부터 기술 유출 의혹도 수차례 받았고, 일본 철강회사로부터 수주를 따내기까지 인종차별도 수없이 겪었다. 

그는 “돌이켜보면 외국인이 차린 중소기업이 현지 대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오로지 아이디어 하나뿐이었다”며 “허름한 나의 창고 사무실 작은 의자에 앉아 밤새 상상하고 고민한 게 결국 지금의 듀라코트를 만들었다”고 했다.

19세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한국은 너무 빨리빨리 성과를 내기만을 요구하는 문화가 아쉽다”며 “청년들이 좀 더 오래 상상하고 그를 통해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기다려줄 수 있는 사회로 거듭났으면 한다”고 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에서 유학하던 시절 베벌리힐스 부잣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하우스보이’를 하며 등록금을 벌었다는 홍 회장은 “마지막 학기 결국 돈이 부족해 휴학을 해야겠다는 내 사정을 들은 미국 교수님이 만기도 안 된 적금을 깨서 200달러를 흔쾌히 내준 걸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200달러의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2001년 전 재산 1000만 달러를 털어 ‘밝은 미래 재단’을 설립하고 교육과 장학 사업을 펼쳐왔다. 2016년에는 재단 이름을 자신과 아내 로리 홍 여사의 이름을 따 ‘M&L HONG 파운데이션’으로 바꿨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