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내 앞가림도 벅찬데…” 연애 엄두안나 ‘썸만추’

작성자 : 슈퍼관리자 / 날짜 : 2019.03.07

94424234.1.jpg 

 

94424235.1.jpg 

 

94424236.1.jpg 

 

94424237.1.jpg 

 

동아일보는 2000년생과 기성세대 사이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웹뉴(웹툰 뉴스)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했다. 4회 ‘#연애는가볍게’ 웹툰은 ‘파페포포’ 시리즈로 유명한 심승현 작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활용해 쉽게 이성을 만나고 헤어지는 신세대의 연애를 토대로 그렸다.

“연애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아요. 바쁜데 감정 소모하기 싫어서요.”

이제 막 ‘꽃다운 스무 살’이 된 이지훈 씨는 자신을 ‘비(非)연애주의자’라고 소개했다. 올해 A대학 스포츠레저학과에 입학한 이 씨는 운동신경이 좋고 성격이 활발해 이성에게 꽤 인기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이 씨는 바쁜 일상에 부담이 될까 봐 연애를 꺼린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감정 소모가 싫어 연애를 꺼리면서도 이성과 ‘썸’은 즐기는 ‘썸만추(연애 말고 썸만 추구)’족으로 통한다. 이 씨는 “학업부터 진로 준비까지, 내 앞가림하기도 어려운데 연애하면서 상대를 챙겨 줄 엄두가 안 난다”며 “앞으로도 상대방이 나를 잘 챙겨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이성과 사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열정적인 사랑보다 ‘러라밸’ 추구  

 

94424227.1.jpg 

 

이 씨뿐만이 아니다. ‘불타는’ 연애를 갈망하며 스무 살을 보낸 이전 신세대와 달리, 2000년생들은 사랑이 자신의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는, 즉 ‘사랑과 삶의 균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워라밸’에서 따온 ‘러라밸(러브 앤드 라이프 밸런스)’이란 신조어가 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유다.

고려대 행정학과 19학번 허채연 씨(19·여)는 ‘서로 집착하지 않고 각자의 선을 지키는 것’을 이상적인 연애로 정의했다. 취업난 등 미래가 불안한 이들에게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허 씨는 “내가 해야 할 일이 1순위이고 연애는 그 다음”이라며 “할 일에 지장을 받거나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연애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취재팀과 취업정보업체 ‘캐치’가 2000년생 142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62명이 연애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답했다. 연애를 할 필요가 없다고 답한 2000년생도 20명이나 됐다. 청년문화를 연구하는 대학내일20대연구소 이재흔 선임연구원은 “이전 세대들은 연애, 결혼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2000년생들은 ‘나’를 중심으로, 내가 원할 때만 관계를 맺는다”며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 젠더 갈등도 연애관에 영향
 

2000년생이 연애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여기는 것은 과거보다 부쩍 높아진 젠더 감수성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고교 재학 중인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지난해 스쿨미투 논란을 겪은 2000년생은 성 평등의식에 일찍 눈을 떴다.  

“여자는 좋은 남자 만나 잘 살면 되는 것 아니냐.” 조모 씨(19·여)는 이런 말을 하는 어른들을 볼 때마다 대들고 싶은 반감을 느낀다. 그는 “학창 시절 똑같이 공부하며 컸는데 왜 성인이 되니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모바일 네이티브’인 2000년생들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된 젠더 갈등을 중학생 시절부터 봐 왔다. 이 때문에 이성을 만날 때마다 상대가 급진적인 ‘여성 혐오’ 혹은 ‘남성 혐오’ 성향을 띤 건 아닌지 ‘돌다리를 두들겨 보게 된다’고 귀띔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현재 취업을 준비하는 김모 씨(19·여)는 최근 지하철에서 ‘마음에 드니 연락처를 알려 달라’는 남성을 만났지만 줄행랑을 쳤다. 데이트 폭력 등이 떠오른 탓이다. 

남성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문모 씨(19)는 여자친구를 사귀기 전에 인맥이 넓은 친구를 통해 상대방이 ‘급진 페미(급진적 페미니스트)’가 아닌지를 확인한다. 친구들끼리 ‘급진 페미 걸러내기’ 방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문 씨는 “혹시라도 나를 ‘한남(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부르는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2000년생들은 연애에 집착하지 않지만 스펙처럼 자신의 ‘매력 자산’을 늘리는 데는 능숙하다”며 “이들이 ‘청춘은 연애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길 원한다는 점을 알아야 제대로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소통&20]자녀가 비혼 선언땐? 닦달보다 ‘결혼 의미’ 대화부터 ▼

Q.올해 스무 살인 딸이 벌써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어려서 그러려니 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됩니다. 어떻게 봐야 할까요.(2000년생 자녀를 둔 강모 씨)



A.
“아무리 좋은 남자여도 일을 그만두라고 하면 결혼 안 할 거예요.”, “주택청약으로 집 당첨되면 결혼할래요.” 취재팀이 만난 2000년생의 결혼관은 다양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2000년생도 적지 않았습니다.   


젊은 세대가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여기는 현상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미혼 성인 2464명을 설문조사했더니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한 남성은 50.5%, 여성은 28.8%였습니다. 2015년보다 남녀 모두 약 10%포인트씩 줄었습니다. 반면 ‘결혼은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답한 남성은 같은 기간 3.9%에서 6.6%로, 여성은 5.7%에서 14.3%로 늘었습니다.  

다 큰 자녀가 ‘비혼’을 고집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2000년생이 5∼10년 뒤 소위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 이런 현상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취재팀이 2000년생 142명에게 결혼 의향을 물었더니 10명 중 4명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거든요. 

결혼에 대해 각자 생각이 다른 2000년생들의 얘기를 곰곰이 듣다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결혼하기 힘든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는 것’을 문제라고 여기는 기성세대의 시선이 더 문제라는 거였습니다. 이런 2000년생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결혼의 의미에 대해 자녀와 다양한 의견을 나누다 보면, 걱정보다는 해법이 보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 동아일보는 2000년생이 부모나 교수, 선배 등 기성세대와 사회에 하고 싶은 한마디를 듣기 위해 카카오톡오픈채팅방(open.kakao.com/o/gysTE7gb)을 개설합니다. 카카오톡 검색창에서 ‘2000년생 한마디 발언대’를 검색하면 됩니다.누구나 익명으로 참여할수 있습니다.

특별취재팀

▽팀장 김윤종 정책사회부 차장 zozo@donga.com
▽정책사회부 김호경 조유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