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직업교육이 취업만큼 어려워요” 청년 울리는 내일배움카드

작성자 : 슈퍼관리자 / 날짜 : 2019.03.12

年200만원 학원 수강료 지원 카드, 작년보다 예산 줄어 발급 어려워져 
“할당량 끝났다” 잇단 퇴짜에 전국 고용센터 돌며 신청 발동동 
일부선 “취업의지 없다” 반려도… 청년들 “발급 늘려달라”靑 청원


올해 2월 전문대 정보기술(IT) 학과를 졸업한 김모 씨(23)는 디자인으로 진로를 바꾸기 위해 지난해 12월 경기 남양주고용센터를 찾아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했다. 내일배움카드란 정부가 직업훈련을 받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고교 또는 대학의 졸업예정자나 취업준비생이 이 카드를 발급받으면 학원 수강료 등 직업훈련 비용으로 연간 200만 원까지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남양주고용센터는 “예산이 부족해 일주일에 한 명만 선발한다”며 김 씨의 내일배움카드 발급을 거절했다. 카드 할당량이 많은 다른 센터에 가서 신청해도 된다는 말에 김 씨는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고용센터에서 가까스로 카드를 발급받았다. 김 씨는 이 카드로 강남의 한 직업훈련기관 교육을 신청해 18일부터 수업을 들을 예정이다.

김 씨는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며 “카드 발급량이 고용센터마다 천차만별인데, 그 기준을 알 수 없어 교육을 받고 싶은 구직자들은 센터들을 일일이 찾아다녀야 한다”고 토로했다. 실력을 키워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려는 구직자들이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전국의 고용센터를 전전하는 ‘고용 난민’ 신세로 전락한 셈이다.


○ ‘고용 난민’으로 전락한 청년 구직자들 

올해 2월 대학을 그만둔 박모 씨(20)도 웹사이트 개발을 공부하기 위해 지난달 서울 남부고용센터를 찾아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했다. 센터 상담사는 “한 달에 3명밖에 안 뽑는데 요즘 신청자가 너무 많아 이 과정(웹사이트 개발)은 지원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상담사는 “한 달간 아르바이트를 한 뒤 신청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근로자’로 인정받아 근로자 몫으로 할당된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근로자 대상 내일배움카드는 발급 물량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박 씨는 “교육을 빨리 받고 싶은데 아르바이트를 하라니 어이가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년들이 이처럼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기가 어려워진 것은 정부가 지난해 이 사업에 쓰일 예산을 충분히 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올해 일자리 예산은 23조 원에 달한다. 이 중 내일배움카드 예산(고용보험기금)은 5900억 원이다. 이는 지난해 집행된 내일배움카드 예산 7040억 원에 비해 1140억 원이 줄어든 것이다. 청년들의 신청 수요가 많고 호응이 좋았음에도 올해 예산을 줄인 것이다. 지난해 정부는 당초 내일배움카드 발급에 5200억 원을 편성했다가 신청자가 급증하자 추가경정예산 1840억 원을 긴급 투입했다.


○ 일자리 정책의 역설로 피해 보는 청년들 

올해 내일배움카드 예산이 줄어들자 정부는 고용센터별로 사전에 할당한 인원까지만 카드를 발급하고 할당을 채우면 발급 요건을 갖췄더라도 전부 반려하도록 전국 고용센터에 지시했다. 이 때문에 고교나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은 우선순위가 있는 장기실업자들에게 밀려 카드 발급이 후순위로 밀리는 사례가 늘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올해 실업급여 예산이 크게 늘어 고용보험기금으로 내일배움카드 예산을 더 확보하기가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실제 정부는 올해 실업급여 예산으로 지난해보다 1조 원 늘린 7조1800억 원을 편성했다. 실업자를 위한 현금성 예산이 늘면서 능력을 키워 취업하려는 청년들이 피해를 보는 ‘일자리 정책의 역설’이 벌어진 것이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컴퓨터 웹디자인 분야의 취업에 도전하고 있는 김모 씨(23·여)도 올해 1월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했지만 “7, 8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특히 상담사는 김 씨에게 “취업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반려 사유를 밝혔다. 김 씨는 “내 취업 의지를 누가 쉽게 평가할 수 있느냐”며 “합리적인 사유를 댈 수 없으니 취업 의지를 문제 삼는 것 아니겠느냐”고 토로했다. 

쇼핑몰 사업을 해보려고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했다가 최근 거절당한 한모 씨(27)는 “왜 카드 발급이 거절됐는지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취업에만 전념할 생각인데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카드 발급을 거절당한 청년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으로 달려가 100여 건의 청원을 올리며 내일배움카드 발급을 늘려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유성열 ryu@donga.com·박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