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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드림]“印尼 마트에서의 13일 경험, 내 인생설계의 주춧돌”

작성자 : 최고관리자 / 날짜 : 201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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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섭 씨는 현재 공익요원 신분인데 왜 자카르타로 가세요?”

지난달 1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출발하기 위해 인천공항 출국장에 들어가자 입국심사대의 법무부 직원은 의심스러운 눈치로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했다. 군인 신분인 내가 머나먼 이국땅으로 간다는 게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의 ‘K프런티어’ 프로그램을 길게 설명하고 근무하는 서울 강동구청 구청장님의 추천서까지 보여준 뒤에야 간신히 심사대를 통과했다. 비행기 탑승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3분. 탑승구까지 전속력으로 뛰어 가까스로 비행기를 탔다. 좌충우돌 12박 13일의 자카르타 체험은 이렇게 시작됐다.

본격적인 해외인턴 체험에 앞서 K프런티어 탐방팀은 인도네시아에서 최초로 한국식 홈쇼핑사업을 하고 있는 레젤홈쇼핑을 찾았다. 한국의 홈쇼핑업체 출신자들이 세운 이 회사는 한국 음악, 드라마, 영화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홈쇼핑 광고를 끼워 넣어 성공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인이 선호하는 한류(韓流)를 적절히 활용한 것이었다.

인도네시아 최고 명문대인 국립인도네시아대에서는 한국 정부 지원을 받아 설립된 정보기술(IT)센터를 방문했다. 놀라웠던 점은 이 대학 학생들의 신상정보와 성적, 과제 등 모든 학습내용이 웹 기반 프로그램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서버 보안을 위해 60여 명의 보안 관리인이 상주하고 있었다. 홈페이지가 최신 국제규격으로 제작된 점도 놀라웠다. 한국이 IT 선진국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한 수 아래처럼 보였던 인도네시아의 대학 IT 시스템이 훨씬 더 철저하고 최신식으로 관리되고 있던 셈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처음 설립된 이 대학 한국문화센터에서 드라마를 보고 음악을 듣는 젊은이들을 만나면서 이들이 한국 문화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었다. 한국 기업들의 인도네시아 진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현지인 수요가 크게 늘어 한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는 학생도 많았다.

인도네시아 체류의 하이라이트는 롯데마트에서의 인턴 체험. 인턴 첫날 롯데마트 직원들을 따라 현지 1위 유통업체인 카르푸를 둘러보다가 ‘유통기한 임박제품 세일 코너’를 발견하고 의아했다. 한국에선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은 인기가 없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은 가격에 민감하다 보니 이런 제품의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돌아와 롯데마트의 근무복으로 갈아입은 뒤에는 창고 짐정리부터 청소, 상품진열, 고객응대 등의 업무가 시작됐다. 우리에게 지시를 내리던 현지인 매니저 만토와 영어로 대화하면서 어느 정도 친해지자 나는 그에게 “여자친구 있어요?”라고 물었다. 만토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나는 게이라서 여자친구는 없어요. 그렇지만 그냥 친구들은 많아요.”

동성애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당황했다. 친해진 다른 현지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인도네시아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자유롭다고 한다. 인도네시아를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지 언어도 배울 수 있었다. 창고에서 일하다 보니 한국어로 ‘힘들다’를 의미하는 ‘자패’, ‘드브(먼지가 많다)’, ‘파나스(물건을 던져라)’ 등의 인도네시아어는 익숙해졌다.

피부색과 언어, 사고방식까지 다른 이들과의 생활에서 불편한 부분이 사실 적지 않았다.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국에서라면 좀 더 빠르게 처리할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이들과 생활을 같이하면서 그들의 생각과 문화, 일하는 방식 등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 내가 세계 어느 지역에서 일하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2013년도 2월 자카르타에서의 경험이 나의 인생설계에 큰 도움이 됐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K프런티어 1기 참가자 이형섭 씨(22)는 서울 보성고를 졸업하고 강동구청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복무를 마친 뒤 올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의 킹사우드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예정이다.

자카르타=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53653001.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