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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드림]스펙 쌓다 창업한 ‘못말리는 5인방’

작성자 : 최고관리자 / 날짜 : 201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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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신입생 시절. 그는 금융권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목표였다. 입학 직후부터 관련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렸다. 인생에는 오직 한길만 있는 줄 알았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도서관에서 자격증 공부를 하고 돌아오다 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거듭해도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 금융권 대기업에 취업하면 행복할까. 시원하게 ‘예스’라는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때부터 그의 고민이 시작됐다. 뭘 하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안은 채 습관처럼 학교와 도서관을 드나들다 우연히 그는 명사 초청 강연 동아리에 들었다. 동아리 동료들은 인물 섭외부터 행사 강연 준비까지 직접 다 했다.

동료들이 힘들다고 불평을 늘어놨지만 그의 심장은 두근댔다. 초청강연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발로 뛰어다니니 그렇게 신나고 즐거울 수 없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한 명사 강연이 끝나고 참석한 학생들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소름이 끼칠 만큼 짜릿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러던 중 명사의 한마디가 머리를 때렸다.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누구나 다 실행하지는 않는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여운은 길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그래, 창업을 하자. 이게 정말 행복할 수 있는 길이다”라고.

엄준태 씨(27) 얘기다. 그는 “제가 어릴 때부터 좀 소심했어요. 갖고 싶은 게 있어도 고민만 하다 부모님께 말도 못 꺼낸 적이 많았죠”라며 “그런데 창업을 떠올리자 저도 모를 만큼 엄청난 용기가 생기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창업을 하기로 마음을 굳힌 시기는 지난해 1월. 마땅한 창업 아이템은 떠오르질 않았다. 그러던 중 대학 후배이자 미대생인 유인태 씨(25)를 만났다. 유 씨는 “실습실 청소 중인데 지난 학기 동안 그렸던 그림들을 버리러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에 엄 씨는 무릎을 쳤다.

‘미대생들의 연습 작품들을 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해 보자.’ 미대생인 여동생이 공을 들여 만든 작품들을 방 한구석에 처박아 쌓아 놓고 있던 모습도 떠올랐다.

젊고 신선한 감각이 돋보이는 대학생들의 연습 작품을 가방 디자인으로 활용하는 사업 아이템. 소비자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의 가방을 갖는다. 비싼 학비와 재료비에 허덕이는 미대생들은 연습 작품을 팔아 숨 돌릴 여유를 가진다. 일석이조의 효과라고 확신했다.

아이템을 정한 엄 씨는 유 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유 씨는 처음에 망설였다. “미대생에게 창업은 별나라 이야기잖아요. 교수님들도 뭘 하는 거냐며 말리셨고.”

하지만 조금씩 흔들렸고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유 씨는 “사실 미술도 잘해서 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초등학생 때 그림을 너무 못 그려 콤플렉스에 시달리자 어머니 손에 이끌려 미술학원에 가게 된 거였다”며 “이참에 내 의지로 뭔가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또 젊으니까, 열정이 있으니까, 무엇보다 훌륭한 선후배들과 함께이니까 해볼 만하단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엄 씨와 유 씨는 다른 학교 선후배들인 이성억(28), 김정훈(27), 민지홍 씨(26)까지 설득해 모두 5명이 지난달 마침내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을 파는 가게’를 열었다.

위치는 인천 부평구의 부평시장 로터리 지하상가. 동아일보와 인천 부평구가 뽑은 청년드림가게 중 한 곳으로 선정된 덕분에 올해 말까지 상가 점포는 무료로 이용한다. 300만 원의 창업 지원금도 받았다.

로터리 지하상가 내 청년드림가게로 엄 씨의 가게를 포함해 16곳이 뽑혔다. 청년 창업가 선정은 서류심사와 면접심사 등을 거쳐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이뤄졌다. 청년 사장들은 4개월 동안 창업교육 등을 받았고 지난달 성대하게 개소식을 가졌다.

엄 씨의 가게는 벌써부터 입소문을 타고 있다. 민 씨는 “개소식이 알려지면서 확실히 사람이 늘었다”며 “다른 지역에서 일부러 찾아오신 손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그의 가게를 지나다 발걸음을 멈추는 이가 많다. 대학생들의 톡톡 튀는 디자인과 화려한 색감에 눈길을 사로잡힌다. 고객들은 가방이 세상에 하나뿐이라는 설명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유 씨는 “아직 견본품 수준의 가방임에도 독특함을 찾는 고객들이 선주문까지 한다”고 귀띔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또 남녀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고객층도 가게의 자랑이다. 엄 씨 등은 얼마 전 LG 신입사원들의 에코백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학교 측의 요청으로 고등학생 창업 지원 프로그램의 멘토 역할까지 맡았다.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 하지만 청년들의 눈은 그보다 훨씬 높은 곳을 향해 있다. 최종 목표는 정하지 않았다.

그 자체가 한계를 두는 거란 생각에서다. 18일은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엄 씨 등 청년 사장들은 일찍부터 가게에 나와 장사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그러다 다들 “지하상가 청년사장들이 모여 시장 활성화를 위해 아이디어를 나누는 월요 기획 회의가 있는 날”이라며 서둘러 가게를 나섰다. 분주한 한 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인천=김예윤 청년드림통신원
고려대 역사교육·정치외교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