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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취업, 강소기업이 답이다

작성자 : 최고관리자 / 날짜 : 2016.05.19

《 10.9%. 통계청이 밝힌 4월 청년(15∼29세) 실업률이다. 제조업 분야로 구조조정 태풍이 몰려오고 있고 청년 실업률은 석 달 연속 역대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지만 19대 국회에서 정부가 내놓은 노동개혁법은 폐기될 운명이다.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산업 전반에 젊은 피를 수혈하려면 임금 체계 개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등을 통해 현장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동아일보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을 바꾸고, 높아진 관심이 기업의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수 있도록 ‘청년이 희망이다―일자리, 강소기업이 답이다’ 10회 시리즈를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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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체를 생산하는 ㈜호원오토는 현대·기아자동차의 1차 협력업체다. 협력업체라고 기업 규모가 작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 편견이다. 광주와 경기 평택은 물론이고 터키에도 공장이 두 개나 있고, 해외법인까지 합친 연간 매출액이 7000억 원에 이른다. 2014년에는 2억 달러 수출 돌파로 금탑산업훈장도 받은 탄탄한 기업이다.

하지만 탄탄한 이 회사 신현주 대표에겐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있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일손이 많이 필요하지만 신입사원 뽑기가 쉽지 않다. 공채를 해도 홍보가 되지 않아 지원자가 적고, 어렵게 채용한 청년도 금세 이직하기 일쑤다. 신입사원 초봉도 3400만 원에 이르고, 해외근무 기회도 많은 데다 복지 혜택도 좋지만 이름난 ‘대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우리는 스펙이 필요하지도 않고, 성실성 하나만 보는데도 청년들의 관심이 적다”며 “청년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은 꼭 남의 나라 얘기 같다”고 하소연했다.

○ 대기업이 청년과 협력업체의 ‘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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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해 7월 내놓은 고용디딤돌 프로그램은 신 대표의 고민을 해결해줬다. 고용디딤돌은 대기업이 청년을 뽑아 직접 훈련시킨 뒤 협력업체나 벤처기업 취업을 알선하는 사업이다. 대기업이 청년과 협력업체 사이의 ‘디딤돌’ 역할을 하는 모델이다.

청년들은 대기업에서 훈련받고 협력업체에서 인턴을 거친 뒤 정규직으로 채용된다. 대기업과 정부가 보증하는 프로그램이라 믿고 지원할 수 있고, 훈련비용과 수당은 대기업과 정부가 부담하기 때문에 협력업체의 부담도 적다. 현재 삼성 현대차 한국전력 LG SK 등 주요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1495명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호원오토에서 생산관리 인턴으로 근무 중인 김병준 씨(25)가 바로 고용디딤돌 1기 수료생이다. 조선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해 17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고용디딤돌에 합격했다. 올해 초부터 현대차에서 훈련을 받은 뒤 4월 호원오토로 왔다.

김 씨는 원래 대기업에 가려고 했지만 지방대 출신인 데다 워낙 경쟁이 치열한 탓에 쉽지 않았다. 어느 날 학과 게시판에서 고용디딤돌 모집 공고를 보고 김 씨는 협력업체에 취업하기로 결심했다. 고용디딤돌 합격 후 현대차에서 받은 훈련은 기대 이상이었다. 철저히 현장 실무 위주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현장에 적응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협력업체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김 씨는 “최고의 부품을 만들어야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고,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던 아버지까지 달라지셨다”며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들도 고용디딤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 대표에게도 김 씨가 ‘복덩이’다. 현대차에서 착실히 훈련받은 덕분에 특별한 교육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었다. 훈련비용과 인턴수당까지 현대차가 주기 때문에 비용 부담도 없다. 인력난과 비용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한 것이다.

호원오토는 올해 고용디딤돌 인턴 1명을 더 채용한 뒤 앞으로는 신입사원의 절반을 고용디딤돌로 채용할 예정이다. 현재 2기 훈련생 453명(협력업체 146곳 배치 예정)을 모집 중인 현대차도 2018년까지 총 2400명을 고용디딤돌로 지원할 계획이다. 신 대표는 “병준이가 지금처럼 일한다면 기꺼이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이라며 “우리는 스펙 같은 거 절대 안 본다. 성실성과 긍정적인 성격만 갖춘다면 누구라도 채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고용디딤돌로 자부심 생겨”

김 씨와 고용디딤돌 동기로 4월부터 ㈜네오오토(자동차 기어 부품 생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최명우 씨(24·한밭대 기계공학과 졸업)는 “현대차에서 두 달간 받은 합숙 교육이 정말 큰 도움이 된다”며 “자동차업계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사실 중소기업은 비용 문제 때문에 대기업처럼 신입사원을 상대로 집단 합숙훈련을 할 수 없다. 최 씨는 “합숙 기간 동안 자동차 생산 현장의 전반적인 교육을 다 받았기 때문에 현장에 적응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기업이 훈련을 담당하고, 비용까지 부담하는 고용디딤돌 사업에 대한 구직자와 협력업체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자 정부도 사업 확대에 나섰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전담하고 있는 대기업 16곳을 모두 참여시키고, 지난해 7곳이 참여하는 데 그쳤던 공공기관도 17곳까지 늘려 총 9400명 규모로 사업을 운영하기로 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고용디딤돌 운영 실적을 반영하는 한편,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고용디딤돌을 운영하면서 부담하는 직업훈련 비용과 훈련수당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정부 지원도 늘릴 예정이다.

특히 앞으로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고용디딤돌 수료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안이 추진된다. 나영돈 고용부 청년여성고용정책관은 “인력난을 겪고 있는 강소, 중견기업 취업을 활성화시켜야 청년 일자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청년 채용을 늘리는 강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대폭 늘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평택=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