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활동·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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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미디어그룹 DNA 인턴 후기

작성자 : 최고관리자 / 날짜 : 2015.05.26

 

동아미디어그룹의 채용연계형 인턴모집이 시작됐습니다.

기자와 PD를 꿈꾸며 DNA인턴에 지원하실 분들을 위해,

청년드림센터에서 인턴기자,PD를 거쳐 수습 기자,PD가 되신 분들의 후기를 가져왔습니다 :)

사진

 

1 

“취재 지시입니다.”

천호성 통합6기(동아일보 21기) D형 인턴(신문기자)
고려대 경제학
2014년 동아일보 수습기자 입사

 

경제부에서의 첫날, 선배로부터 이메일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월세를 구하는 강남의 전세난민을 찾는 것이 임무였습니다.       대강의 현장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한 뒤 노트북을 챙겨 취재 장소로 나섰습니다. ‘제때 마칠 수 있을까’하는 조바심에 광화문에서 반포까지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저의 첫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처음엔 현장도 취재원도 모두 낯설었습니다. 신문사에서 왔다고 하면 공인중개사들의 표정이 굳었습니다. “보는 신문 있다”며 입을 다물기 일쑤였습니다. 20여 곳의 중개사무소를 들락거린 뒤 해질 무렵에야 사례를 찾았습니다. 취재보고서를 허겁지겁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퇴근길 버스에선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또 하고 싶다.’ 벌써부터 다음날이 기다려졌습니다.
이후의 7주는 꿈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동아일보 인턴기자라는 이름으로 누구에게든 질문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지면에서만 보던 전문가들을 인터뷰했고, 잔디밭에서 바늘 찾기처럼 드문 케이스도 집요한 질문 끝에 찾아냈습니다. 많이 묻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묻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그때 배웠습니다. 기사가 실리는 날이면 현관 앞에 신문이 놓이는 소리를 기다렸다가 잽싸게 펼쳐 읽었습니다. 저의 노력이 수십만, 수백만 독자들에게 ‘뉴스’가 된다는 사실에 가슴 벅찼습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마지막 출근일이 찾아왔습니다. 사원증도, 명함도, 기사 쓸 자격도 사라지고 학생으로 돌아간다니 자정을 앞둔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제 푸념을 들은 한 선배는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호성 씨는 언젠가 꼭 기자가 될 것 같아요. 착실히 준비해서 현장에서 만납시다.”  인턴생활이 끝난 지금, 기자가 되겠다는 저의 꿈은 어느 때보다도 확고합니다. 늘 궁금한 것 많던 저에게 기자가 가진 ‘질문의 특권’은 다른 어떤 직업의 장점보다 매력적입니다. 그 권한을 책임감 있게 쓰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아낌없이 가르쳐주신 선배들께 감사드립니다.

  

2

“그 여름의 아이스크림”

손가인 통합6기(동아일보 21기) D형 인턴(신문기자)
서울대 국어국문학/언론정보학
2014년 동아일보 수습기자 입사

 

어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맛보기로 떠 주는 한 숟갈의 감칠 맛이랄까요. 그 여름 맛 봤던, 짧았지만 깊었던 동아미디어그룹 DNA인턴은 꿈을 찾느라 땀을 뻘뻘 흘리던 제게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돼 주었습니다. 무더위에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 쯤 선물같이 찾아 온 기회였습니다.

아침 지옥철에 끼어 출근을 하는 것도, 햇볕에 내 놓은 이마가 새카맣게 타는 것도 그렇게 좋을 수 있었을까요. 지나온 스물 몇 번의 여름, 앞으로 올 수많은 여름을 생각해 봐도 그 때 그 계절만큼 행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동아일보 인턴기자’라는 이름을 안은 채 보고 듣는 모든 순간이 아까우리만큼 소중했습니다. 취재를 하며 입술 밖으로 ‘동아일보 인턴 기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때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일분 일초가 모두 반짝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첫 걸음을 내딛는 아이처럼 여기저기 부딪히기도 하고 걸려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막막함에 한숨짓기도 하고 끝을 알 수 없는 문전박대에 눈물도 찔끔, 흘려 봤습니다. 하루 종일 메고 다닌 노트북 가방에 어깨가 시큰거려 잠시 앉아 숨을 고르면서 ‘기자란 이런 직업이구나’ 하고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일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조차 감사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찾아 읽어 주는 당신도 분명 그게 어떤 마음인지 알 거라 믿습니다. 동경하던 ‘기자’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본다는 건, 원한다고 해서 언제든 겪어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선배 어깨너머로 함께 취재한 기사에 제 이름 석자 바이라인이 실리기라도 하면 다음날 두 손에 받아 볼 조간신문이 기다려져 밤잠도 설쳤습니다.

다시 여름이 왔습니다. 기자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의 꿈이 날씨만큼이나 뜨겁겠지요. 한 숟갈 맛 본 그 달콤함을 잊지 못해 저는 다시 이 길, 이 곳을 선택했습니다. ‘언론고시’라는 이름의 내리쬐는 햇볕이 너무 따가울 때, 입 안이 텁텁하게 말라오고 걸음이 무거워질 때 동아미디어그룹 DNA 인턴을 찾아오세요. 여름을 견디고 알차게 여문 당신을 상상하면서.

 

 

3 

‘그들이 사는 세상’, ‘내가 사는 세상’

황인영 통합6기 A형 인턴(PD)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미학

2014년 채널A 수습PD 입사

 

PD가 되겠다고 결심하고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다. PD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데, 당시의 나는 도서관에 홀로 앉아 신문으로 세상을 보고, 글로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경험의 전부였다. PD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오히려 PD라는 직업과 멀어지게 만드는 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할 무렵 DNA 인턴 기회가 찾아왔다.

사실 DNA 인턴 시험에는 한 번 떨어진 경험이 있다. 연습 삼아 본 시험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오기로 본 두 번째 시험이 내 삶을 이렇게까지 뒤바꿔 놓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합격은 꿈도 꾸지 않았던 터라 더 없이 감격스러웠던 방송사의 첫 합격 통보,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내디딘 첫발이었다.

나는 이전에도 인턴을 경험한 적이 있다. 반도체 기업의 R&D 팀에서 한 번, 캐나다의 밴쿠버 영사관에서 한 번. 물론 PD가 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들이다. 그럼에도 인턴 경험을 언급하는 이유는 DNA 인턴이 그 때의 인턴 경험들과는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가장 크게 달랐던 점은 인턴에게 주어지는 ‘기회’와 요구되는 ‘적극성’이었다. 인턴 때 내가 속한 프로그램은 ‘광화문 콘서트’와 ‘먹거리 X파일’. 둘 다 자체로 제작되는 프로그램이어서 내부 인력이 해야 할 일, 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좋은 기회였다. 사실 기회와 적극성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DNA 인턴에서는 필요 이상의 일을 시키지 않지만, 원한다면 그 외의 일들까지도 해볼 기회가 많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또 다른 의미로 자신의 PD DNA를 시험해볼 기회이기도 했다.

DNA 인턴에 합격했을 당시 나는 계절학기만 들으면 졸업이 가능한 상태였다. 계절학기와 DNA 인턴 사이의 고민, 그때 내가 계절학기를 택했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 ‘내가 사는 세상’이 되기까지, 단언컨대 DNA 인턴 경험은 무엇보다 귀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사는 세상’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주저 말고 찾아오길 바란다. DNA 인턴은 ‘당신의 꿈’을 ‘당신이 사는 세상’으로 만들 첫 번째 기회가 될 것이다.

  

 

4

 “PD는 넥타이 못 매도 괜찮습니다~”

김영태 통합 5기 A형 인턴(PD)
서강대 정치외교학/신문방송학
2014년 채널A 수습PD 입사

 

“혹시 넥타이 맬 줄 아세요?”
2013년 겨울, 눈 내린 광화문 거리에서 저는 행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넥타이 매는 것 좀 도와달라고 말이죠. 바보 같아 보이지만 제 딴에는 절박했습니다. ‘DNA 인턴’ 면접을 보기 30분 전이었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합격한 인턴 생활은 한마디로 신났습니다. 아침 생방송의 긴박감 때문에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는 것도, 개그맨 신동엽 씨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프로그램이 끝나고 스탭 스크롤이 올라가는데, ‘인턴PD'라는 이름으로 제 이름 석자가 쓰여 있을 때는 정말 황홀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신났던 건, ‘진짜 PD’선배들과 ‘진짜 PD’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스터디를 하며 친구들과 아무리 이야기를 나눠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결국 'PD 지망생‘일 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인턴을 하면서 그동안 가졌던 궁금증을 모두 풀겠다는 다짐을 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왜 PD가 되셨나요’, ‘어떻게 공부하셨나요’, ‘일하면서 연애는 할 수 있나요’ 등등 사소하고 막연한 질문부터 개인적인 고민 상담까지 참 많이도 질문을 드렸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질문들, 그 대화들이 제가 꿈을 키워가는데 큰 힘이 되어 준 것 같아요.

고백하자면, 사실 전 아직도 넥타이를 맬 줄 모릅니다. 정장을 입지 않고 스냅백을 쓰고 다녀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회사에 다니는 덕분이겠지요. 어디 넥타이 매는 것만 모를까요. 여전히 시청자가 좋아할 아이템은 무엇일지, 카메라는 어떻게 찍어야 잘 나올지, 그리고 PD라는 직업이 무엇인지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들과 같이 알아가 보고 싶습니다. 후배와 선배로서, 그리고 동료로서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하나씩 배워 가면 좋겠습니다. 저 수다 떠는 일 정말 좋아합니다. 벌써부터 여러분이 궁금해지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얼른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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