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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박지순]청년실업 포괄 해결에 주력한 유럽의 노동개혁

작성자 : man-ds / 날짜 : 2016.02.22

해고 완화 노동개혁, 비정규직 해법 연계
노조 끌어들이려 정치권 부단한 노력
노사정 합의 파기, 한국과 뚜렷한 대비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민국은 노동 개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렵사리 노사정 합의를 거쳐 입법과제의 목록까지 작성했지만 속 시원히 해결되는 것 없이 결국 합의 자체가 파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어떤 것이든 결과가 있으면 그래도 뭔가 해냈다는 안도감으로 빨리 몸살을 털고 일어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언제 어떻게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물론 정부가 공정인사 지침 등 이른바 지침을 통해 개혁의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지침은 새로운 질서와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므로 아무래도 개혁의 가치와 시장에 미치는 동력은 떨어진다.

그런데 우리와 어느 정도 유사한 노동시장의 조건을 갖고 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과감하게 노동 개혁을 감행했고 때마침 경제와 노동시장의 지표가 개선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노동 개혁 과정에 전문가로 참여하면서 문제점과 개선과제를 고민해 왔던 필자와 몇몇 전문가들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관련 기관 방문과 토론을 통해 개혁의 핵심 키워드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앞으로 연구와 분석을 거쳐 결론을 내려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얻은 나름대로의 시사점은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저성장, 높은 실업률, 비정규직 확산, 청년고용 절벽 등 우리와 비슷하거나 훨씬 더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았다. 그 뒤 실업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감축하며 청년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해고 유연성을 높이고 근로조건의 유연한 변경을 촉진하는 노동법 개혁을 단행했다. 스페인은 개혁 직전에는 실업률이 23%에 이르고, 청년실업률은 52%에 달했다. 기간제 근로자 등 비정규직은 30%를 넘었다. 이탈리아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 개혁 직전 실업률이 13%에 달하고 청년실업률은 44%에 육박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스페인은 2010년과 2012년 노동 개혁을 통해 해고 제도 개선과 근로조건 변경 제도를 도입했다. 이탈리아는 2012년과 2014년 해고 제도의 개선과 정규직 채용에 대한 재정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스페인은 부당해고 시 근로자에게 근속연수당 45일분의 수당을 지급하는 금전보상 제도를 운영해 왔으나 이를 33일분으로 축소했으며, 경영상 해고의 사유를 최종 3년간 지속적인 적자 발생에서 3분기 연속 적자 발생 또는 그 가능성으로 요건을 대폭 완화하면서 근로자에게 근속연수당 20일분의 금전 보상을 하도록 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개혁 이전에는 부당해고에 대해 원직 복직과 금전 보상을 모두 해야 하였으나 2015년부터는 차별 해고 등 특정 사유를 제외하고는 최대 24개월분까지 금전 보상을 해주기로 했다. 특히 기존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법 시행 후 신규 근로자를 새로 채용하는 경우에는 채용 시점에 따라 3년에서 2년까지 기업이 부담하는 사회보험료를 전액 또는 40% 감액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물론 새로 도입된 해고 규제 완화는 법 시행 후 채용된 근로자에게만 적용되고 기존 근로자의 기득권은 유지했다.

전통적으로 강력한 노동법과 노동조합을 가지고 있던 남유럽에서 노동 개혁이 관철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감하고 단호한 정치권의 개혁 의지뿐만 아니라 노조 측의 공감대를 끌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협상을 시도한 정치권의 노력이 있었다. 노조는 유연화 일변도의 개혁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이라는 국가적 대의를 위한 개혁의 필요성까지는 부정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고 규제의 완화를 노동 개혁의 핵심 과제로 삼으면서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유인하고 신규 채용을 확대하는 데 주력했다. 비정규직 문제와 정규직 해고 규제 완화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이 점은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와 해고 규제 문제를 별개의 과제로 접근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 국가의 노동 개혁 성과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의도한 효과가 실제로 나타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해고 규제 문제가 단순히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청년고용 확대로 연계될 수 있도록 제도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창의적 개혁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처 : http://news.donga.com/List/3/03/20160220/76551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