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미의 한국 블로그]한국인의 지극한 자동차 사랑
작성자 : admin / 날짜 : 2015.01.02
난 차가 없다. 그래서 버스나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지하철도 그렇지만 특히 버스는 노선이 그물처럼 펼쳐져 있어 더욱 편리하다. 시간에 여유가 있으면 여러 노선을 시도해 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은데, 워낙 버스 수가 많다 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마다 10개 이상의 버스가 멈춘다. 몇 대가 동시에 도착할 때가 많은데, 버스는 정류장에 바로 서는 게 아니라 뒤나 앞에 정차하는 일이 많다. 그때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달려간다. 처음에 그런 모습을 봤을 때는 의아했지만 그렇게 달리지 않으면 승차할 수 없다는 것을 이내 알았다. 노인들에게는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 이제는 나도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지하철과 KTX는 상대적으로 편하게 승차할 수 있다. KTX를 탈 때마다 개찰구가 없다는 점이 신기했다. 처음 탔을 때는 개찰구를 찾아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열차에까지 들어갔다. 마음은 계속 불안했다. 일본의 신칸센처럼 차 안에서 차장이 티켓을 확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줄곧 티켓을 손에 들고 기다렸다. 그러다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부정 승차로 오해받을까 봐 고민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차장이 좌석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단말기를 갖고 있다고 들었다. 역시 정보기술(IT) 선진국이라며 감동했다. 개찰구가 없이 편하게 승차할 수 있다는 점은 특히 시간이 없을 때 편리할 것 같다.
10년 전 내 기억을 더듬어보면, 지하철 탈 때 좀 혼란스러웠다. 지하철이 도착할 때쯤 여기저기서 타려는 사람들이 앞다퉈 승차하는 광경도 보았다. 내리는 사람과 타는 사람이 뒤엉키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한국 지하철 내 승차문화가 확연히 달라졌다. 이용 에티켓과 관련된 포스터 문구가 많아졌는데, 그 효과 때문일까.
일본에서도 이용객의 매너를 계몽하는 포스터나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 있다. 예를 들면 차내에서 큰 소리로 떠들지 말 것, 다리를 쩍 벌리고 앉지 말 것, 신문을 크게 펼쳐서 읽지 말 것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시대상을 반영해 새로운 문구들이 늘었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지 말 것(일본에는 아직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어서 선로에 떨어질 위험이 크다), 여행용 가방을 운반할 때 주변을 살펴달라는 것 등이 그러하다.
한국에서 지하철을 탈 때 ‘뭔가 내부 분위기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최근에 깨달았다. 낮 시간대에는 샐러리맨을 거의 보지 못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통근 시간대는 물론이고 낮에도 넥타이를 매고 비즈니스 정장을 입은 직장인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나이 든 노년층과 학생들만 많았다. 다른 노선을 탔을 때도 큰 차이는 없었다.
나름대로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 첫 번째는 직장인들이 모두 비즈니스 정장을 입는 것이 아니어서인 것 같다. 회사에 따라서는 넥타이를 꼭 매지 않아도 되고 캐주얼한 복장으로 출근해도 되는 회사가 일본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 한번은 운동기구 회사를 방문했는데 근무하는 직원들이 대부분 캐주얼 복장을 하고 있어서 놀랐던 적이 있다.
두 번째로 한국에서는 영업 등 일로 밖에 나갈 때 차를 자주 이용하는 것 같다. 업무 중 지하철과 버스를 탄 적이 거의 없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즉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자동차를 많이 쓰는 사회인 것 같다. 지인이 서울에서 고향인 부산에 갈 때 KTX가 아니라 차로 가겠다고 한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한국은 일본보다 차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흔하다.
만성 교통체증이나 차량 배기가스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 친구 차로 교외에 놀러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다 보니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점점 침침해 보였다. 편리함 대신에 푸른 하늘을 잃는 건 아닐까.
반대로 일본의 젊은이들은 차에 관심이 없어진 지 오래다. 경기가 나쁜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꿈이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자동차를 갖고 싶다’ ‘좋은 차를 타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뭔가 해보자’는 의지의 원동력이 된다. 예전에는 일본 사람들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 긴 불황의 터널에서 간신히 벗어날 조짐도 보이긴 하지만 침체 분위기에 익숙해진 일본 젊은이들은 점점 소극적으로 변하는 것만 같다.
가와니시 히로미 씨는 한국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 주부다. 한국에서 산지도 3년째에 접어든다.
가와니시 히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