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의 기업공개(IPO)가 임박했다. 제일모직이 내년 계획했던 기업공개를 앞당긴 이유는 업무 연관성이 높은 계열사들끼리 묶는 방식의 그룹 지배구조 재편 작업을 서두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는 그룹 체제를 전자와 건설, 금융 3가지 축으로 단순화하는 작업의 신호탄 성격을 가지고 있어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대한 사업 재편도 조만간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순환출자 해소…이 부회장 건설 계열 지배력 강화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제일모직은 삼성생명 지분 19.3%를 보유하고 있다. 그룹 체제는 제일모직이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와 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같은 순환출자 구조는 금산분리 강화 움직임에 부합되지 않아 삼성그룹이 조만간 체제 재편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이를 위해선 계열사 지분정리를 통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간 연결고리를 제거하는 길이 가장 효과적이다.
삼성그룹이 제일모직을 활용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시나리오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전자부문)와 지주회사(투자부문)로 인적분할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 투자부문(지주회사)은 전자 지분 11.23%를 보유하고 있고 타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면 총 16.55%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오너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사업회사 지분 4.69%를 현물출자하면 새로 설립된 지주회사는 삼성전자 지분 21%를 가지게 된다.
여기에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과 지주회사를 합병하면 그룹에 대한 지배력은 더 높아진다. 지주사를 통해 삼성전자를 장악하고 건설부문을 포함한 그룹 계열사 전체를 확실하게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런 방식의 체제 개편 움직임은 사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지난 9월 이사회를 통해 합병을 결의하면서 감지됐다. 삼성중공업 최대주주는 지분 17.61%를 보유한 삼성전자다. 삼성중공업이 삼성엔지니어링을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어서 지분이 다소 희석되지만 합병법인의 최대주주 역시 삼성전자다. 이때 합병법인에 대한 삼성전자의 지분율은 12.5%가 된다.
삼성물산은 지주회사 설립과 동시에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팔아야하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간 순환출자 고리는 끊어지고 지주회사의 직접적인 지배 아래 놓인다. 그룹 입장에서는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상사부문을 떼어내 각각 다른 계열사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경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최근 삼성엔지니어링이 실적부침을 겪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건설부문을 통합하지 않고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삼성중공업과 엔지니어링 합병법인을 당분간 자회사로 두는 방안이 유력하다.
◇제일모직 건설도 분리…삼성重·삼성ENG 합병이 관건
삼성그룹 지배구조 재편은 순환출자 해소와 계열사 수직계열화를 통해 이 부회장 체제 구축을 위한 발판을 다지겠다는 의도와 함께 중복사업을 정리해 그룹 전체의 경영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건설부문 합병이 가시화되는 시점에 맞춰 제일모직이 담당하고 있는 건설사업을 통째로 떼어내 건설 계열사와 통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일모직은 건설과 레저, 패션, 급식·식자재 유통 사업부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건설사업이 제일모직 매출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지난해 제일모직 매출액은 3조151억원으로 건설사업을 통해 1조5470억원의 매출을 거둬들였다.
투자은행업계(IB) 관계자는 "시공능력 27위 정도의 중견 건설업체와 맞먹는 규모"라며 "그룹 계열사가 발주하는 공사가 대부분이라는 점이 한계지만 건축과 조경 부문에는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주회사를 정점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건설부문은 이 부회장 직할체제로 편입되고 호텔, 레저 산업, 식음료 부문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만 건설부문 통합은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이 완료돼야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달 17일까지 진행되는 두 회사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주식매수청구권이란 회사가 합병이나 영업양도 등 행위를 진행할 때 이를 반대하는 주주가 보유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매수할 것을 회사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주주총회를 통해 합병을 최종 결정하면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을 각각 2만7003원, 6만5439원으로 확정했다. 주주가 매수청구를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은 이달 17일까지다.
두 회사는 주식매수 한도액을 9500억원, 4100억원으로 설정했으며 청구액이 이 범위를 넘어가면 합의를 통해 합병을 취소할 수 있다고 공시한 바 있다. 주주들이 대거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두 회사 합병이 무산되는 구조인 셈이다.
앞서 2009년 현대모비스가 오토넷과 합병을 추진했지만 2조8796억원에 달하는 매수청구액이 몰려 합병을 포기한 전례도 있다.
건설기업 관계자는 "최근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이 자사주를 매입해 시장에 신뢰를 심어줬고 두 회사 주가 흐름도 좋아 합병 무산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면서도 "하지만 합병이 무산되면 삼성물산은 물론 그룹 건설부문에 대한 재편 작업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에 주식매수청구 결과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