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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률에만 혈안’ 대학들, 결국 ‘인문학 말살’ 구조조정

작성자 : admin / 날짜 : 2015.03.10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에서 "신산업융합대학 신설과 관련한 학교의 졸속적인 대학평의원회 개회, 학생의견 수렴 절차가 없는 일방적인 구조조정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이화여대 학생들. © 뉴스1

 

 

대학들이 학과제를 폐지하고 계열제를 도입하거나 새로운 과를 신설하는 등 학과제도 개편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융·복합형 인재 양성'이 대학들이 내세우는 명분이지만 결국에는 '취업 잘되는 과'를 집중 육성하고 도태되는 학과는 통폐합 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지적이 이어지며 대학 교육의 '상업화', 인문학 전공 학과의 축소·폐지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앙대는 지난달 26일 '학사구조 선진화 간담회'를 열고 2016학년도 입시부터 기존 학과제를 폐지하고 계열별로 신입생을 뽑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앙대가 밝힌 학사구조 개편 취지는 "학생들이 자신에게 맞는 학과를 직접 찾게하고 신규 및 융·복합 학문 신설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부 교수들은 "개편안의 본질은 기업논리에 의한 학문 말살"이라고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개편안이 학교 측이 과거 진행했던 '학과 통폐합'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게 교수들 주장의 핵심이다.

실제 중앙대는 2010년 18개 단과대를 10개로 줄이고 77개 학과를 46개로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을 했다. 2013년에는 비교민속·아동복지·가족복지·청소년학과를 폐지했다.

이번 개편안 발표 과정에서도 중앙대 관계자는 "선택을 받지 못한 전공은 다른 학문과 융·복합 등 다른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전공 통폐합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계열로 입학한 뒤 인문학 전공 학과보다는 취업에 유리한 과를 선택하려는 경향을 보일텐데 그렇게 되면 결국 인문학 전공 학과 등이 '통폐합' 도마에 될 것이라는 게 교수들 우려다.

이화여대도 최근 기존 6개 학과와 신설되는 융합콘텐츠 학과로 이뤄진 신산업융합대학을 2016학년도부터 신설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전되는 학과들이 의류학과, 국제사무학과, 체육과학부(스포츠과학전공·글로벌스포츠산업전공), 식품영양학과, 보건관리학과 등 6개로 대체로 취업률이 낮은 학과라는 점이다.

학교 측은 "여러 학과들 중 융합적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학과들로 선별한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지만 개편안 발표 뒤 학생 대표로 구성된 중앙운영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측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학과의 정원을 서서히 줄이거나 폐지하는 절차를 밟게 될 것" 등을 우려했다.

대학 입장에선 '시대적 흐름과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이라는 표면적 명분을 내세워 개편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정부의 대학 평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개편을 하고 있다는 게 대학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교육부는 1년에 한 번씩 교육여건과 교육성과, 중장기발전 등을 100점 만점으로 환산해 전국의 대학을 최우수, 우수, 보통, 미흡, 매우 미흡 5단계로 평가한다.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대학은 대학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 재정지원에도 제한을 받는다.

특히 정원감축은 '눈에 띄는' 등록금 수익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에 대학들 입장에선 치명적이다.

소위 '명문대'들이 그나마 교원충원률 등 대학 기본 교육여건이 잘 갖춰져 높은 점수를 받는다고 해도 '최우수' 자리를 놓고 비슷한 대학끼리 경쟁해야 하는 처지는 마찬가지다.

대학교육연구소가 2015년 교육부 평가 지표를 바탕으로 4년제 사립대 총 163개교를 모의 평가한 결과 9.1%인 13개 학교만이 '최우수' 등급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들은 교육부가 최근 배점을 늘린 취업률을 높이는 방안으로 개편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김삼호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창조경제 등을 거론하며 대학 평가과정에서도 취업률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중점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대학 입장에서는 시쳇말로 '돈벌이', 취업잘되는 학과 위주로 키우려는 방향으로 구조개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지방대나 인지도가 낮은 대학들은 0.1 차이로 대학의 '생사'가 갈릴 수도 있어 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취업률 올리기에 혈안이 돼 있다.

수도권 한 대학 관계자는 "각 대학 관계자들이 모이는 모임 등에선 정부가 취업률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정책을 던지고 그걸 따르지 않으면 정원 감축, 재정지원 등에 있어 불이익 등을 받게 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앓는 소리가 나온다"고 귀띔했다.

서울의 한 대학 기획팀 관계자도 "현 제도는 결과적으로 '취업률'을 얘기하는 것 아니냐"며 "아무리 주요대학이라고 해도 학과개편이나 구조조정이 그 쪽으로 갈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획 담당자 등 모임에선 대학 평가에 대한 언급은 암묵적으로 금기시 돼 있다"며 "특히 지방대나 인지도가 낮은 대학들은 (대학평가에 대해)말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노력들이 정말 치열하다"는 말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의 한 대학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졸업생을 3학년으로 편입시키기도 했고 졸업생을 조교로 채용한 것처럼 꾸미거나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학생들이 그 회사에 취직한 것처럼 속이는 등 부작용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취업률' 중심으로 대학평가를 하며 '취업난'의 책임을 대학에 전가하기 전에 정부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삼호 연구원은 "취업이라는 것 자체가 일자리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지 이런 식으로 대학들을 '쥐어짠다고' 안되던 취업이 되는 게 아니다"며 "이런식의 평가를 통해 대학의 잘못처럼 비치게 하기 전에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대학학회 회장인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도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들에게 취업률을 높이라고 하는 건 단지 경쟁을 붙여놓는 것 밖에 안된다"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건 대학의 기능이 아니고 대학으로선 그런 능력도 없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일자리를 만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

[출처 : http://economy.donga.com/3/all/20150301/698800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