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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서 개발해 선진국으로 수출 ‘역혁신’ 성공하려면…

작성자 : 최고관리자 / 날짜 : 2015.07.20

레버리지프리덤체어(LFC)는 미국 MIT대 공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 GRIT(Global Research Innovation & Technology)에서 개발한 바퀴 셋 달린 휠체어다.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인 개발도상국 장애인들을 공략하기 위해 개발한 제품으로 본체 양 옆에 기다란 레버가 달려 있다. 지렛대 원리가 적용된 레버를 양손으로 조작하면 바퀴의 회전력과 속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거친 길은 물론 가파른 경사에서도 거뜬히 움직일 수 있다. 2012년 세계적인 창업 경진대회인 미국 보스턴 매스챌린지(MassChallenge)에서 다이아몬드 상을 수상했을 만큼 혁신성을 인정받은 휠체어다.

LFC는 손으로 바퀴를 직접 굴리는 일반 휠체어에 비해 속도는 80% 빠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힘은 40% 적게 든다고 한다. 그런데도 가격은 인도 현지에서 판매되는 일반 휠체어 가격과 비슷한 250달러(약 28만원) 수준이다. 휠체어 구동부 등 핵심 장치에 값싼 자전거 부품을 사용함으로써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데 성공한 덕택이다. 자전거 부품은 인도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기 때문에 고장이 나도 쉽게 수리할 수 있는 장점까지 갖췄다.

최근에는 기존 LFC를 개량한 신제품이 미국 시장에서 출시됐다. 산악자전거타기처럼 기존 휠체어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레포츠를 즐기기 원하는 선진국 장애인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산악 스포츠용 휠체어로 제품을 개선한 것. 미국에서 판매중인 GRIT 프리덤체어 가격은 대당 3000달러가 넘는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코리아(HBR Korea) 최신호(7,8월 합본호)는 신흥시장의 현지 상황에 맞게 제품을 개발해 글로벌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LFC를 소개했다. 처음부터 인도 등 개도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저가 제품이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는 통념을 깨뜨릴 정도의 우수한 품질을 기반으로 이제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HBR 논문의 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 성능은 100% 유지하되 가격은 10%로

비제이 고빈다라잔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는 신흥시장 공략을 위해 ‘역(逆)혁신’이란 개념을 제안했다. 과거 글로벌 기업들은 선진국에서 개발한 혁신적인 제품을 변형시켜 개발도상국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신흥시장을 공략했다. 하지만 이제는 개도국에서 직접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현지 시장을 공략한 후 글로벌 수준에 맞게 약간 개선해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역혁신’ 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전통적으로 다국적기업들은 최상의 성능을 최고가에 제공하는 ‘최고급’ 제품을 만들고, 그것의 80% 정도 성능을 담아 80% 가격에 제공하는 ‘고급’ 제품과 70% 성능을 70% 가격에 제공하는 ‘우수’ 제품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선진국 시장을 공략했다. 이어 개도국에 진출할 때에는 ‘우수’ 제품의 성능과 가격을 절반으로 떨어뜨린 ‘양호’ 제품을 들고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역혁신에 성공하기 힘들다. 적정한 가격에 적절한 기술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양호한 제품을 내놓는다지만, 실제 개도국에선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제품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개도국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더 나아가 선진국으로 역수출하는 단계에 이르려면 최고급 제품의 성능은 100% 유지하되 가격은 10%로 낮추는 혁신 노력이 필요하다.

● 가격 낮추겠다고 무작정 기능을 제거하는 건 금물

1990년대 중반 세계 3대 자동차 업체 중 하나가 인도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이 회사는 자사가 보유하고 있던 기존 모델 가운데 중간 가격대 자동차 하나를 점찍었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불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기능들을 모조리 제거한 후 값을 낮췄다. 그렇게 없앤 기능 중 하나가 뒷좌석의 파워윈도 기능이었다.

가격을 낮췄다고는 하지만 인도에서 출시된 이 자동차의 가격은 개인 운전사를 고용할 정도로 부유한 인도 최상위 계층이나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앞좌석에 앉는 운전사는 파워윈도 기능을 쓸 수 있지만 정작 뒷좌석에 앉는 차 주인은 손잡이를 돌려서 창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능을 줄여 가격을 낮추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가격을 낮출 욕심에 성능을 훼손시켜 고객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저렴한 인건비 등 신흥시장 나름의 강점을 활용해 최적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 신흥시장 특성 활용해야

불과 10년 전만 해도 질레트는 인도에서 주로 최상류층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고가 제품만 판매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현재 인도에서 팔리는 면도기 3개 중 2개는 ‘질레트 가드’라는 제품인데, 개당 가격이 15루피(약 270원)에 불과하다. 이는 질레트의 다른 면도기 ‘마하3’나 ‘퓨전파워’ 제품의 2~3% 수준에 불과하다.

질레트는 가드 개발을 위해 무려 1000명에 달하는 인도 성인 남성들의 면도기 사용 행태를 3000시간 넘게 분석했다. 그 결과 인도 남성들은 밀착 면도를 원하며, 면도하는 데 최대 30분까지 투자할 정도로 시간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따라 질레트는 면도날을 하나만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었다. 물론, 다중날을 사용하지 않으면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며 면도질을 해야겠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인도 소비자들에겐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신, 질레트는 하나의 날로도 안전하게 수염을 바짝 깎을 수 있는 해법을 찾는 데 고심했다. 그 결과 피부를 평평하게 눌러주는 구조의 카트리지를 개발했다. 이에 더해 얼굴에서 턱, 목으로 이어지는 굴곡을 따라 면도기 머리 부분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하는 기술 개발에도 성공했다. 그 결과, 질레트는 생산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기능이 뛰어난 혁신적 제품(가드)를 개발했다.

비록 질레트 가드는 아직까지 인도에서만 판매되고 있지만 성공적인 역혁신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역혁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에서 판매하는 기존 제품을 수정하기 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개도국 현지 소비자들을 위한 고품질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리=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