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인사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0대 그룹 중 LG그룹이 26일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을 그룹 지주회사인 ㈜LG의 신성장사업추진단장(부회장)으로 이동시키는 인사를 실시하면서 2016년 대기업 임원 인사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다음 달에는 삼성, 현대차, SK 등 주요 그룹들도 잇달아 임원 인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 성과에 기초한 혁신 인사
LG의 2016년 임원 인사의 핵심 키워드는 ‘성과’와 ‘혁신’ ‘위기 돌파’다. LG디스플레이 한상범 사장은 액정표시장치(LCD) 산업 성장이 둔화되던 2012년에 사장으로 취임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및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와 같은 신기술 제품을 성공적으로 사업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번 인사는 특히 LG가 그룹 차원에서 전력을 쏟고 있는 신성장사업인 에너지와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 실적을 낸 이들이 대거 발탁됐다는 특징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LG전자 생산기술원장인 홍순국 전무. 그는 에너지와 자동차 부품 분야의 장비기술 개발로 수주 확대에 기여한 성과를 인정받아 부사장 단계를 뛰어넘어 소재·생산기술원장(사장)으로 발탁됐다.
㈜LG 사업개발팀 백상엽 부사장은 부사장 1년 차에 시너지팀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도 울릉도와 제주도 등 국내외 도서지역을 친환경 에너지 자립섬으로 바꾸는 솔루션 사업을 주진하며 성과를 인정받았다.
LG전자 이상봉 부사장은 태양광 사업의 성과 개선 및 B2B(기업 간 거래) 사업 강화를 인정받아 사장으로 승진해 B2B부문장 겸 에너지사업센터장을 맡았다. LG화학 손옥동 기초소재사업본부장은 석유화학·소재 분야에서 전년 대비 영업이익 2배라는 성과 창출에 기여해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LG화학 김명환 배터리연구소장도 전기차용 전지 및 전력저장 전지 시장을 선도한 성과로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LG생활건강 정호영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LG화학 CFO 사장으로, 서브원의 이동열 부사장은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사업담당 사장으로 각각 승진했다.
LG생활건강의 이정애 전무는 생활용품시장에서 일등의 지위를 확고히 한 성과를 인정받아 전무 3년 차에 부사장으로 승진해 ‘LG그룹 최초의 여성 부사장’이란 기록을 세우게 됐다. 현재 LG 내 여성 임원 수는 15명이다.
애초 실적 부진으로 사장단 승진 폭은 작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LG는 이날 부회장 1명, 사장 7명 등 모두 8명의 사장단 승진 인사를 실시했다. 지난해는 사장단 승진자가 3명에 불과했다. LG 측은 “저성장과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어려운 경영환경을 돌파하기 위해 대폭의 혁신 인사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체 임원 승진자는 지난해(130명)보다 줄어들 것으로 알려졌다.
LG는 이날 ㈜LG를 포함해 LG전자,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생활건강, LG하우시스 등 7개 계열사의 임원 인사를 확정했다. 27일엔 LG유플러스, LG CNS, LG상사 등 계열사의 인사를 실시하고 2016년 임원 인사를 마무리한다. LG유플러스 대표이사로는 권영수 LG화학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해 부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섭 LG유플러스 부사장은 LG CNS 대표이사로 승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 LG전자는 각자 대표 체제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은 ㈜LG로 옮겨 소재·부품, 자동차 부품, 에너지 등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LG전자의 테두리를 벗어나 LG화학, LG디스플레이 등 LG그룹 전체 계열사를 총지휘하게 된 것이다. 다만 ㈜LG의 구본무 대표이사 회장과 하현회 대표이사 사장 2인 대표이사 체제에는 변함이 없다.
LG 고위 관계자는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오너인 구 부회장이 최적임자”라고 말했다. 실제 구 부회장은 스마트폰 사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LG전자가 실적이 악화되던 2010년에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그 후 LG전자는 자동차 부품과 에너지에 집중 투자하며 과거 굴뚝기업에서 현재 B2B 중심의 첨단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 삼성 내달초 사장단 인사… 승진 소폭 전망 ▼
부회장이 빠져나간 LG전자는 과거 최고경영자(CEO) 중심 체제에서 사업본부별 책임경영 체제를 강화해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LG전자는 정도현 최고재무책임자(CFO), 조준호 MC사업본부장, 조성진 H&A사업본부장 등 3인의 각자 대표 체제를 구성했다. 또 기존 4개 사업본부(MC, H&A, HE, VC)를 그대로 두고 본부장 이동도 없애 본부별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체제를 만들었다.
○ 나머지 그룹은 ‘소폭’ 승진 인사 예상
삼성은 다음 달 초 사장단 인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올해 삼성전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계열사가 지난해보다 실적이 안 좋기 때문에 사장 및 임원 승진은 최소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수시 인사로 임원진을 교체해 온 현대차그룹은 12월 25일을 전후해 소폭의 승진 인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지난해 433명의 대규모 연말 승진 인사가 있었던 것과 달리 올해는 상대적으로 실적이 부진해 지난해보다 승진 인사 규모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중순경 임원 인사를 실시하는 SK도 지난해 주력 계열사 사장을 대거 바꾸는 인사를 실시했기 때문에 올해는 비교적 소폭의 ‘안정’형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