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염희진]규제 한국,데스밸리로 내몰리는 벤처인
작성자 : 슈퍼관리자 / 날짜 : 2019.03.04
지난달 22일 벤처기업협회가 주최한 ‘벤처기업 규제 및 애로 개선 간담회’에 참석한 A 대표는 자신을 ‘데스밸리에 빠진 5년 차 벤처기업인’이라고 소개했다.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뜻하는 데스밸리는 주로 스타트업 창업 3∼5년 차에 찾아오는 어려움을 뜻한다. 기술개발 후 제조를 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거나 유통 및 마케팅 단계에서 초기 자금을 써버렸을 때 벤처기업인은 이 계곡에 빠진다.
A 대표는 2014년 회사 설립 후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1억 원을 지원받아 스마트 가로등 통신모듈을 개발했다. 데이터 비용이 들지 않고도 원격 제어가 가능한 가로등은 세계 최초였다. 하지만 그후 A 대표는 12억 원의 개인 자금을 쏟아붓고도 회사는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투자까지 받지 못해 주문이 들어와도 양산이 어려운 상태에 빠졌다. 지난 5년간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A 대표는 자신이 개발한 스마트 가로등을 판매하고자 2년 전 조달청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조달청으로부터 입찰 자격이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직접 제품을 생산할 공장을 운영 또는 소유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제조업체의 직접생산이 가능한 생산시설, 즉 공장이 있어야만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입찰참가자격을 얻을 수 있다. 조달물자의 품질관리를 위해서라는 게 조달청이 내세우는 규제의 명분이다.
A 대표는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제조 벤처들은 대부분 외주 공장에 제조를 맡기는데 자가 공장이 있어야만 입찰할 수 있는 건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현장을 모르는 규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A 대표는 조달청을 통해 연간 20억 원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최근 취재하면서 만난 창업 3년 차 이상의 벤처기업인들은 신(新)산업에 대한 규제의 벽을 사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전까지 없었던 첨단기술을 밑천으로 하는 벤처기업인이야말로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낡은 규제들과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사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구조적 문제를 A 대표처럼 개별 기업인들이 알아서 돌파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