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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문안 인사해야 재계약”… 청년 울린 풍물시장 甲질

작성자 : ydeditor / 날짜 : 2015.12.25

강화군 청년 6명의 피자가게 ‘화덕식당’ 쫓겨날 위기

청년 사장 6명이 공동으로 화덕피자를 굽고 파는 강화풍물시장 내 ‘화덕식당’. 동아일보DB
 

“수년간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던 외진 곳에서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피자 한 판밖에 팔지 못해 낙담한 적도 있었어요. 입에 풀칠할 돈조차 못 벌어도 손님한테 맛있는 화덕 피자를 대접하자는 마음으로 6명이 똘똘 뭉쳐 일했는데….” 

수화기 너머로 힘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인천 강화군 강화풍물시장 2층에 자리 잡은 ‘화덕식당’ 청년 사장 신희승 씨(27)는 “무력감에 울먹이는 친구를 보며 ‘우리가 왜 꿈을 꿨을까’라는 억울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화덕식당이 문을 연 것은 2014년 1월. 신 씨와 조성현 씨(29) 등 청년 상인 4명이 의기투합했다. 고르곤졸라와 마르게리타 같은 피자를 8000∼9000원에 판매했다. 강화 특산물인 밴댕이와 고구마를 이용한 피자까지 선보이며 지역 맛집으로 거듭났다. 지금은 6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이 짧은 시간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건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문화관광형시장’ 지원 대상으로 화덕식당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2년간 임차료를 내지 않고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공설시장인 강화풍물시장의 다른 점포들은 2년마다 계약을 맺는다. 화덕식당도 이제 내년부터 강화군청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임차료는 연간 200만∼300만 원이다.

문제는 계약 과정에서 비롯됐다. 신 씨 주장에 따르면 군청 측은 “기존 시장 상인들의 ‘긍정적인 검토’가 있어야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한다. 상인회도 “우리 추천서가 있어야 임대차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밝혔다. 청년들은 “상인회 측이 ‘추천받고 싶으면 두 가지 조건을 지키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요구 조건은 ‘아침 9시마다 상인회장에게 문안 인사를 드린다’, ‘2, 3개월 동안 시장 1층 카페에 상시 대기하고 부르면 언제든지 나와 시장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다’ 등이다.  

 

화덕식당 청년들은 이런 사연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24일 현재 2500여 개의 ‘좋아요’와 댓글 270개가 달렸다. 댓글에는 “노예도 아니고 전근대적인 갑질이 도처에 존재한다” “아예 부당한 조항을 티셔츠 문구로 새겨 입고 손님들에게 보여 줘라”는 청년 ‘을(乙)’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강화군청 담당자는 “군청과 상인 간의 임대차 계약이기 때문에 상인회의 추천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신 씨는 “‘긍정적인 검토’든 ‘추천서’든 명칭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의 갑질과 책임 회피에 막막할 뿐”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자 상인회장은 24일 오후 시장 내 방송을 통해 “(청년들 말은) 거짓말이다. 시장에 타격을 주고 있지만 상인들은 동요하지 말라”고 했다. 상인회 관계자는 “추천이라는 권한도 없을뿐더러 문안 인사와 같은 말 자체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