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초단기 근로자 32만명 늘어… 고용의 질 추락

작성자 : 슈퍼관리자 / 날짜 : 2019.04.11

웃을수 없는 취업자 수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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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장모 씨(46)는 최근 평일 이틀간 14시간 일하는 직원 한 명과 주말 이틀간 14시간 일하는 직원 한 명을 채용했다. 예전 같으면 직원 한 명에게 평일과 주말 모두 맡기면 될 일이지만 굳이 2명으로 나눴다.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고용하면 주휴수당으로 하루 치 임금을 더 줘야 하기 때문이다. 장 씨는 “다른 자영업자들도 주휴수당이 부담돼 ‘쪼개기 알바’를 쓰고 있다”고 했다.

일자리의 양은 물론이고 질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10일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1, 2월 주당 15시간 미만 일하는 근로자는 1년 전보다 27.3%(31만9447명) 늘었다. 임시·일용직에서는 27.8%, 상용직에서는 23.0% 늘었다. 지난해 11월부터 매달 10만 명 안팎의 신규 취업자가 생기고 있는 농림어업 부문도 절반 이상은 급여를 따로 받지 않는 여성 무급 가족종사자였다.


○ 일자리 쪼갠 초단기 근로자 급증


통계청은 이날 내놓은 고용동향에서 3월 취업자가 1년 전보다 25만 명 증가했고 실업률은 4.3%로 같은 기간 0.2%포인트 하락했다고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반적으로 고용 회복의 기미가 강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고용여건이 실질적으로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주휴수당 지급이 올해부터 최저임금법 시행령에 포함돼 의무사항이 됨에 따라 이 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는 초단기 근로가 대폭 늘었다. 1월에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13.8% 증가했던 초단기간 근로자는 주휴수당 지급이 강제력을 갖게 됐다는 사실이 업주들에게 알려진 2월에는 41.2% 급증했다. 
 

배달원, 주유원, 경비원 등 최저임금의 인상 여파를 직접 받는 단순노무 종사자는 증가폭이 더 컸다. 15시간 미만 일하는 단순노무 종사자는 임시직을 기준으로 1월에 23.6%, 2월에 115.3% 증가했다. 취약계층이 비교적 쉽게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에서 ‘쪼개기’가 더 심하게 나타났다. 

3월 고용동향에서도 취업시간 감소가 뚜렷했다. 지난달 1주일에 1∼17시간 일하는 신규 취업자는 전년 같은 달보다 24만1000명 늘었고, 18∼35시간 일하는 신규 취업자는 38만7000명 증가했다. 36시간 미만 취업자가 60만 명 이상 늘어난 것이다. 반면 36시간 이상 취업자는 1년 전보다 33만8000명 감소했다. 


○ 농림어업 신규 취업 절반은 돈 안 받는 가족

최근 고용 증가세는 농림어업 부문이 주도하고 있다. 작년 11월부터는 취업자 증가폭이 10만 명 안팎으로 급증한 뒤 지난달에도 증가폭이 7만9000명에 이르렀다. 역설적으로 이 분야에서 고용이 는다는 것은 전체 고용의 질이 후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본보가 통계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 1, 2월 농림어업 취업자 증가폭 22만4700명 중 11만4000명(50.7%)은 집일을 도우면서 돈을 따로 받지 않는 여성 무급 가족종사자였다. 

이들을 취업자로 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농업인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강원 홍천군에서 버섯을 키우는 강모 씨(41)는 “아내가 하루 3∼4시간 전화주문과 택배발송 등을 하니 당연히 취업자”라고 말했다. 반면 전북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김모 씨(32)는 “아내가 일을 해도 직접 수입이 생기지 않고 취미 삼아 하는 것이라서 취업자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농촌이 기존 비경제활동인구나 실업자를 흡수하면서 농림어업 취업자가 증가한 것일 뿐 실질적인 일자리 증가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전남으로 귀농한 최모 씨(35)는 “최근 취업을 못 한 젊은이가 많아져 농사짓는 부모들이 시골로 불러들이는 경우가 늘어났다”면서 취업자 수는 늘지만 실제로 버는 돈은 똑같아서 생산성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 노인 일자리 폭증… 청년 체감실업은 최악

 

취업자 수 증가가 2개월 연속 20만 명대를 나타냈지만 낙관하기는 이르다. 정부의 노인일자리사업 영향으로 60세 이상 취업자가 1년 전보다 34만6000명 늘어 취업자 수 증가를 견인했다. 반면 제조업 부진으로 40대 고용률은 14개월 연속 감소한 78%였다. 15∼29세 청년층이 체감하는 실업률은 25.1%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장기간 실업상태에 있는 청년들이 아예 구직활동조차 하지 않는 잠재구직자로 분류돼 공식실업률에서는 빠지고 체감실업률에만 포함됐기 때문이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는 “정부는 고용 현실을 냉정하게 보지 못하고 눈앞의 비판만 피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 이새샘·김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