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재개발 시공사 선정을 위한 부재자 투표가 진행 중인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신흥2재개발구역. 용역업체 직원으로 보이는 건설사 관계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수주전에 뛰어든 GS건설·대우건설 컨소시엄과 대림산업 직원 100여 명은 각자 승용차로 어디선가 조합원(토지 소유자)들을 태워 오고 있었다. 투표소 앞에 붙은 ‘50m 인근 시공사 관계자 접근 금지’라는 현수막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투표소 바로 앞에서는 한 건설사 직원 15명이 조합원을 대상으로 ‘호객’ 행위를 해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재개발·재건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당국이 도입한 각종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최근 부동산 경기 회복 분위기를 틈타 각종 재개발·재건축 현장은 건설사 간 수주 경쟁 과정에서 금품, 향응 제공 등 온갖 탈·불법이 횡행하고 있다.
신흥2구역은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건설사 간 홍보전이 과열돼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홍보공영제’를 도입했다. 건설사가 개별적으로 조합원을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취지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24일 신흥2구역 현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한 건설사에서 과일바구니, 담배 등 선물을 받았다”며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은 것도 몇 차례 있다”고 했다. 부재자 투표 기간을 6일로 해 건설사의 ‘매표(買票)’ 가능성만 높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양측이 조합원 1인당 100만 원 정도에 표를 사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2010년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공공관리제를 도입해 건설사의 개별 홍보를 금지하고 있다. LH가 신흥2구역에서 적용한 홍보공영제와 비슷한 제도지만 유명무실하긴 마찬가지다.
시공사 선정을 앞둔 서울 영등포구 상아·현대아파트는 현대산업개발 현대건설 포스코건설 등 국내 7개 건설사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24일 이 아파트의 한 주민은 “현대산업개발에서 명품 백을 가져왔지만 돌려줬다”며 “조합원 대부분이 건설사에서 선물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합의 한 임원은 “조합에 부정 홍보 3건이 신고됐는데 한 명은 명품 백을, 두 명은 각각 상품권을 받았다고 한다”며 “자체적으로 파악한 바로는 일부 대의원에게는 100만 원어치의 상품권을, 일부 조합원에겐 10만 원씩을 뿌렸다고 한다”고 전했다. 경찰은 18일 조합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상품권 150만 원을 확보했다.
경찰이 구청의 수사 의뢰를 받아 수사 중인 곳도 있다. 올해 상반기 건설업계 최대 관심사였던 서울 서초구 삼호가든 3차 재건축 수주전에서 20일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하지만 현대건설 대림산업 롯데건설 등 3개 회사가 과열 경쟁을 해 서초구가 경찰에 16일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이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에 대해 정식 수사에 나선 것은 2010년 공공관리제 도입 이후 처음이다. 건설업계에선 이들 3개 건설사가 이번 수주전에서 각각 100억∼200억 원을 썼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수주전에 뛰어든 건설사들이 조합원 1인당 최대 2000만 원을 주고 표를 샀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40억 원이면 조합원 400여 명 중 절반 정도를 확보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아파트의 한 주민은 “경찰 수사로 인해 재건축 절차가 미뤄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