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서울 광진구 워커힐로의 SK아카디아. 쉐라톤워커힐호텔 옆에 위치한 SK그룹의 이 연수 시설에 정장 차림을 한 20대 초중반 청년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SK그룹과 300여 개 협력 업체들이 함께 진행 중인 ‘고용 디딤돌 1기’에 지원한 취업 준비생들이다. 이날은 4일 시작된 서울 지역 면접 마지막 날. 면접은 모두 30개의 방에서 1시간 단위로 진행됐다. 대기 장소에서는 미리 도착한 지원자들이 집에서 챙겨 온 면접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두어 시간 앞서 도착한 이들도 있었다. ○ 취업난에 청년들 중소기업으로 눈높이 낮춰
SK그룹은 고용 디딤돌 1기에서 모두 100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최종 합격자들은 내년 1월부터 3개월간 SK그룹 직무교육을 받고, 이후 3개월 동안 자신이 지원한 SK 협력 업체에서 인턴으로 일한 뒤 정식 채용이 결정된다. SK 고용 디딤돌 프로그램 지원자는 모두 4100여 명으로 경쟁률은 4 대 1이 넘었다. 대졸에 한정하면 경쟁률은 5 대 1, 석사 이상 연구개발(R&D) 인력은 무려 15 대 1에 달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이른바 ‘SKY’ 출신도 이번 프로그램에 상당수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 채용에 이처럼 많은 취업 준비생이 몰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최악의 취업난 속에서 중소기업으로 눈높이를 낮춘 청년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물론 SK라는 대기업의 후광 효과도 작지 않았다.
8월 서울 소재 여대를 졸업한 이모 씨(23·컴퓨터공학)는 대기업과 대형 게임 회사 등에 여러 차례 원서를 넣었지만 취업하지 못했다. 그는 이번에 게임 업체 프로그래머로 지원했다. 이 씨는 “프로그래밍 분야는 아무래도 여성보다 남성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많다”며 “중소기업이라 좀 망설였지만 SK가 보장하는 회사라고 하니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졸업을 한 학기 유예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김모 씨(26·영어영문)는 “SK그룹의 직무교육도 받을 수 있고 비록 중소 업체지만 마케팅 실무 경험을 3개월이나 해볼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렸다”고 말했다.
서류전형 통과자는 모두 2500여 명. 이날 400여 명을 포함해 2000여 명이 서울(4일, 7∼9일)에서 면접을 봤고, 나머지는 14∼15일 이틀간 대전과 울산 면접에 참여할 예정이다.
○ 협력 업체들은 기대 반 우려 반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시스템통합(SI) 업체 투비에이스는 이날 두 차례나 면접을 봤다. 임직원이 35명 안팎인 이 회사에 고용 디딤돌 지원자가 15명이나 몰렸기 때문이다. 이 회사 류갑일 부장은 “직원 채용은 주로 주위 소개 등에 의존해서 하는데 늘 어려움을 겪어 왔다”며 “SK 협력 업체라는 이유로 젊은이들이 많이 지원해 줘서 굉장히 고무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협력 업체 인사 담당자는 “경기 용인에 위치한 우리 회사가 좋은 대학을 졸업한 인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고도 했다.
다만 고용 디딤돌 지원자 대부분이 ‘SK’라는 브랜드를 보고 찾아왔다는 점은 협력 업체들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애써 뽑은 인재들이 6개월 과정을 마친 뒤 다시 대기업 취업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협력 업체 사이에서는 “스펙 좋은 지원자들일수록 오히려 더 선발하기가 부담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하반기(7∼12월) 대기업 공채가 대부분 마무리된 상황이어서 고용 디딤돌 프로그램 경쟁률이 예상 외로 높았다”며 “인턴도 회사에 자신을 어필해야 하지만 중소기업으로서도 좋은 인턴을 한 명이라도 더 남기기 위한 전략을 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